기록을 갈아엎은 폭염
2026년 6월, 유럽 전역이 '오메가 블록'이라 불리는 열돔 현상에 갇혀 40도를 훌쩍 넘는 기록적인 폭염을 겪고 있습니다. 프랑스 남서부 피소스는 23일 44.3도를 기록해 1947년 관측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고, 파리도 이틀 연속 40.9도를 찍으며 사상 유례없는 더위를 보였습니다. 영국 햄프셔에서는 36.1도가, 벨기에는 1833년 이후 6월 최고치인 37도가 관측되는 등 대서양 건너편까지 신기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열돔은 북아프리카 사하라의 뜨거운 공기가 고기압에 갇혀 서유럽에 정체되면서 만들어집니다. 제트기류가 차단돼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조이며, 유럽의 기온 상승 속도가 세계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는 경고가 나왔습니다.
멈춰버린 일상
극심한 더위는 곧바로 사회 전반의 마비로 이어졌습니다. 프랑스에서만 최소 48명이 숨졌고, 안전 장비 없이 분수대와 강에 뛰어들다 익사한 사람이 약 40명에 달했습니다. 변전소 과열로 전국 10만 6천 가구가 정전을 겪었고, 원자력 발전소는 냉각수 부족으로 발전량을 4.1GW 줄였습니다. 전력 수요의 7%가 사라진 셈입니다.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은 조기 폐쇄했고, 영국은 1,100여 개 학교가 휴교에 들어갔으며 이탈리아는 로마·밀라노 등 16개 도시에 적색경보를 내렸습니다. 파리와 지역을 잇는 열차 70여 편이 취소됐고, 휴가철 관광객들은 매진된 생수 앞에 줄을 서야 했습니다.
에어컨, 정치적 논쟁으로 번지다
이번 폭염은 프랑스의 낮은 에어컨 보급률이라는 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전체 보급률이 25%에 불과하고, 학교는 7~14%, 의료시설은 40%에 그쳐 미국(약 90%) 등 주요국과 큰 격차를 보입니다. 2003년 폭염에서 1만 4천800명이 사망했던 트라우마도 되살아나면서 에어컨 확대가 내년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 떠올랐습니다.
국민연합(RN)은 병원·요양원·학교 등 취약시설에 에어컨 설치를 무이자 대출과 함께 추진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와 녹색당은 무분별한 보급이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을 늘려 기후 위기를 키운다며 반대했고, 녹색당은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기후 휴가'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기후 적응과 탄소 감축 사이의 줄다리기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WHO는 유럽 기온 상승이 세계 평균보다 두 배 빠르다고 경고하며 각국에 기후 탄력 보건 시스템 투자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2003년 7만 명 사망의 대참사가 다시 오지 않으려면 단기 대응과 장기 대책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