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이용한 26조 원 담합의 실체
검찰이 미국과 이란 전쟁 직후 국내 유가 폭등의 배후에 정유 4사의 조직적 담합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는데요. 이번 담합으로 인한 전체 경쟁제한 효과는 약 2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담합의 구체적 수법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가격 인상 시기와 규모를 먼저 협의한 뒤, 나머지 두 회사가 이를 추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정유사들은 상당한 양의 원유를 비축하고 있어 가격을 급등시킬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례 없는 수준으로 유가를 올렸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직원들이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올해 2조 벌 듯"이라고 나눈 대화가 증거로 확보되며, 국가적 위기를 수익 창출 기회로 삼은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손실보전 요구와 담합 혐의의 괴리
정부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한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난 3월부터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유사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4조 2천억 원의 예비비를 편성했는데요. 정유업계는 싱가포르 석유제품 수출가격(MOPS)을 기준으로 3조에서 5조 원의 손실 보전을 요구해왔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MOPS 가격과 국내 기름값 사이의 연관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MOPS가 크게 하락했을 때도 국내 가격을 동결하거나 오히려 인상한 사례가 다수 발견되었고, GS칼텍스 내부 자료에서는 최고 가격대가 원가보다 높아 이익이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정유사들이 국제 원가에 기계적으로 연동하여 판매가를 정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었음을 보여줍니다.
당연히 담합 기소는 손실보전 논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유 4사가 1분기에만 합산 약 6조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상황에서, 수조 원대의 세금을 투입해 보전해야 한다는 명분이 크게 약화된 것입니다.
유통구조 개혁과 정산 논의 전망
정유사들의 문제는 담합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2021년부터 자영주유소에 석유 전량을 자사에서만 구입하도록 강제하는 전량구매계약을 체결하며, 가격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갑질을 이어왔습니다. 소상공인들이 더 저렴한 공급 경로를 찾지 못하게 막은 이 관행은 지난 4월 뒤늦게 폐지되었습니다.
사실 정유사들은 손실보전과 담합 혐의는 별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에 따른 부담인 만큼 실제 원가 자료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정산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요.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국제가격을 직접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최고액 정산위원회에서 구체적인 원가 인정 범위와 적정 마진 기준이 어떻게 결정될지에 따라, 이번 사태의 향후 수익성과 제도 개선 방향이 크게 좌우될 전망입니다.
검찰은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산업부와 자료를 공유할 방침이며, 법원의 엄중한 처벌과 함께 과점된 유통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