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스값, 다시 100유로 앞으로
최근 유럽 천연가스 지표 가격이 메가와트시당 97유로를 넘어서며 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네덜란드 TTF 1개월 선물은 장중 97.64유로까지 올랐고, 전 거래일보다 4% 상승했습니다. 이달에만 30%가량 뛰었고, 연초와 비교하면 3배 수준입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의 고점에는 못 미치지만, 시장이 체감하는 불안은 그때와 사뭇 다릅니다. 가격을 밀어 올린 건 공급 쪽입니다. 중동 분쟁으로 글로벌 가스 흐름이 흔들린 데다 유럽의 가스 재고율이 75%에 그쳐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생산 차질까지 겹치면서 난방 수요가 늘어나는 시점에 물량 확보 경쟁이 거세진 겁니다. 선물시장의 급등이 아직 소비자 요금에 고스란히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방향은 이미 정해진 분위기입니다.
공급 중단 시나리오가 부르는 비용
라이스타드 에너지는 카타르와 UAE의 LNG 공급이 연말까지 중단될 경우 전 세계 수입업체의 조달 비용이 2178억 달러에서 최소 2563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추가 부담만 390억 달러, 우리 돈으로 50조원을 웃도는 규모입니다.
유럽은 LNG의 65%를 현물시장에서 사들이고 장기계약의 4분의 1이 가격지표에 연동돼 비용 상승 폭이 18%에 이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는 장기계약의 82%가 유가에 묶여 있어 상승률이 9.7%로 추산됩니다.
다만 이 수치는 공급 중단이 이어지는 상황을 전제로 한 계산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호르무즈 해협이 3분기에 다시 열리고 7월부터 10월까지 공급이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쟁 전 호르무즈를 지나던 LNG가 전 세계 공급의 20%가량을 차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회복 시점과 속도가 가격의 방향을 가를 변수인 셈입니다.
내년 물가로 번지는 불씨
소비자 가격은 선물시장보다 완만하게 오르고 있지만 이미 곳곳에서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독일의 신규 가입 가스 요금은 올해 55% 급등했고, 프랑스에서는 9월 에너지 물가가 1년 전보다 21.3% 올라 전체 물가 상승을 이끌었습니다.
영국도 가정용 에너지 요금 상한선이 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습니다.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유럽 각국은 재고 확보와 요금 부담 완화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스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내년 소매요금 인상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공급이 예상보다 빨리 정상화되면 상승 압력은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지금 시장이 주시하는 건 결국 중동의 긴장 완화와 겨울철 수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