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넘어 홍해와 카스피해까지
미국과 이란의 대립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한때 전운에 휩싸였습니다. 공습이 일시 중단되면서 직접 충돌은 잠시 멈췄지만, 긴장은 호르무즈를 넘어 홍해와 카스피해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제 중동은 단일 해협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해상 통로가 연이어 위협받는 복합 위기에 직면한 겁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홍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후티 반군의 교전입니다. 지난 23일 후티 반군이 사우디 유조선을 공격하자 연합군은 다음 날 호데이다를 공습했고, 후티는 지잔과 얀부의 아람코 시설을 향해 미사일과 드론을 날렸습니다. 이번 충돌은 2022년 유엔 중재 휴전 이후 4년 만에 재개된 무력 대립입니다.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 이후 홍해가 우회 보급로로 떠올랐지만, 수니파와 시아파의 오랜 갈등이 다시 표면으로 튀어나오며 중동에 새로운 전선이 생겼습니다.
카스피해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란이 러시아에 무기를 수송하는 상선을 공격해 선원 1명이 숨지는 인명 피해를 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러시아 위성이 미군 시설을 감시한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공격이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려는 무언의 경고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란은 남부 호르무즈와 북부 국경선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곤란한 처지에 놓인 셈입니다.
유가 100달러 돌파와 공급망 차질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치면서 국제 유가는 두 달 만에 100달러 선을 넘어섰습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96달러대에 거래되었고, 바클레이스는 봉쇄가 3개월 이상 이어질 경우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까지 막히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운임비 부담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가중되었습니다.
사우디는 기존에 동서 송유관으로 호르무즈를 우회해 왔으나, 이제 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마저 위험해졌습니다. 수에즈 운하나 희망봉으로 경로를 바꿀 경우 운송 기간이 약 4주 더 늘어나고 비용도 크게 증가합니다. 수에즈 운하의 일일 최대 통행량이 750만 배럴 수준에 머물러 추가 물량 수용에도 한계가 명확합니다.
여기에 러시아 정유 시설이 우크라이나군 공격을 받아 휘발유 생산이 계절 평균의 65%까지 줄어든 점도 변수입니다. 그동안 4억 10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 방출로 유가 상단을 억제해 왔지만, 2026년 7월을 기점으로 이 효과가 종료되면서 방어선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OECD 석유 재고는 2014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해협 봉쇄가 길어질 경우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유업계의 고육지책과 남은 과제
유가 급등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국내 정유업계는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얀부항에서 원유를 싣고 올 초대형 원유운반선을 물색했으며, 이집트 수메드 송유관 활용 가능성까지 조건에 넣어 선박을 확보했습니다. 정유사들은 미주와 아프리카, 호주, 아시아산 등으로 공급선을 넓혀 올해 중동산 원유 비중을 60%대로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정부 역시 물가 방어를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를 유지하고 유류세 인하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다만 대체 공급선 확대에는 운송 거리 증가에 따른 해상 운임 상승이라는 딱한 현실이 따릅니다. 북미산 원유 등은 운송 시간이 길어 단기간에 물량을 대체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전문가들은 유동성 효과까지 감안하면 2027년 WTI 연평균 130달러 전망이 더 빨리 현실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동의 전운이 한 곳에서 멈추지 않고 여러 해역으로 번지고 있는 지금, 에너지 안보는 단순한 가격 문제를 넘어 공급망 전체의 생존을 건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