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틀 만에 내놓은 민생 카드
앤디 버넘이 영국 제59대 총리로 취임한 지 이틀 만에 가정용 전기요금 부가가치세를 기존 5%에서 0%로 낮춘다고 발표했습니다. 내년 3월까지 6개월간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이번 조치로 영국 가정은 연간 약 45파운드를 절감할 수 있게 됐는데요. 버넘 총리는 이를 두고 국민에게 숨 쉴 여유를 되찾아주겠다는 약속의 이행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임 키어 스타머 정부가 보여준 느린 대응과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파격적인 출발입니다.
재원 마련 방식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향후 3년간 18억 파운드가 투입될 예정이던 디지털 신분증 사업을 전격 폐기하고, 이 예산을 생활비 대책에 전환한 것입니다. 노숙 문제 해결을 위한 3년간 3억 4천만 파운드 추가 투입과 주택 1,200채 공급 계획도 함께 내놓았습니다. 또한 일주일에 하루는 총리 관저가 아닌 맨체스터에서 집무하겠다고 밝혀 탈런던화와 지방분권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경제 모델 전환과 파격 인선
버넘 총리는 지난 40년 이어진 기존 흐름을 끊는 서킷 브레이커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핵심은 필수 서비스에 대한 공적 통제 강화와 영국 전역의 재산업화를 골자로 한 새로운 10년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예산권을 쥔 재무부의 영향력을 줄이고 총리실 중심의 국정 운영 체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상징은 내각 2인자인 재무장관 인선에서도 드러납니다. 버넘 총리는 한 달 전 스타머 정부의 국방 예산 부족을 강하게 비판하며 사임했던 존 힐리 전 국방장관을 재무장관으로 기용했습니다. 힐리는 재무부와의 충돌에서 무능을 지적했던 인물인데요. 이번 인사는 전통적 지지 기반인 북부와 노동조합을 결집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에드 밀리밴드 전 에너지안보 장관을 외무장관으로 보낸 것도 주요 인선입니다.
대내외 난제와 불확실성
버넘 총리의 행보가 속도감을 내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합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여전히 악화된 공공 재정과 촉박한 시간입니다. 2029년 차기 총선까지 성과를 보여야 하는 상황에서 국채 시장은 영국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전기요금 감세로 인한 8억 5천만 파운드의 재정 손실과 디지털 ID 예산 전환이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대이란 공습을 지원하기 위해 영국 내 군사기지 제공을 승인하며 안보 현안에도 즉각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북해 유전 시추 확대를 검토하는 등 에너지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챙기려는 모습입니다. 다만 2016년 브렉시트 이후 10년간 6명의 총리가 교체된 영국 정치의 단명 잔혹사를 끊어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