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9명의 대통령, 불안한 민주주의의 계절
페루가 다시 한번 갈림길에 섰습니다. 6월 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우파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와 좌파 로베르토 산체스 후보가 맞붙었는데요. 개표율 90%를 넘긴 시점에서 후지모리 후보가 약 51%로 소폭 앞서고 있지만, 신속 집계에서는 산체스 후보가 50.3%를 기록하며 근소하게 우세했습니다. 두 후보의 득표율은 사실상 오차범위 내 동률에 가까운 초박빙입니다.
페루의 정치적 혼란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배경입니다. 최근 10년간 임시 대통령을 포함해 9명의 대통령이 교체되었고, 전직 대통령 4명이 현재 수감 중일 정도로 정국 불안이 극심한데요. 지난 대선에서는 650만 명 이상이 투표를 포기할 만큼 유권자들의 정치적 불신도 깊은 상황입니다. 이번 결선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중대한 시험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독재자의 딸'과 '탄핵 대통령의 후계자'
이번 선거의 양강 구도는 페루 현대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네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선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는 2024년 사망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입니다. 그는 페루의 고질적인 치안 불안을 해결하겠다며 당선 시 60일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교도소에 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수감자 노동 의무화와 강력 범죄 단체 척결이 핵심 공약인 셈입니다.
반면 심리학자 출신인 로베르토 산체스 후보는 탄핵을 당한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현행 헌법 개정과 국가폭력 피해자 배상을 내걸었습니다. 광업과 농업 등 천연자원 개발에 대한 국가 감독 권한 강화와 사회적 지출 확대를 통해 부를 재분배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당연히 보수와 진보의 가치 충돌은 표심을 극명하게 갈랐고, 도시와 농촌 간의 지역적 대립도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투표함이 쓰레기통에서 나오다
선거 결과를 둘러싼 긴장은 투표 과정의 부실함에서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차 투표에서는 민간업체의 배송 차질로 리마 남부에서만 6만 3,300명이 투표하지 못했는데요. 설상가상으로 리마의 한 쓰레기통에서 투표함이 발견되는 사태가 터지면서 부정선거 의혹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피에로 코르베토 선관위원장이 사임하는 등 선거 신뢰도에 큰 상처가 났습니다.
이번 결선에서도 개표 초반에는 도시 지역 표심이 반영돼 후지모리 후보가 앞섰으나, 후반에 농촌 지역 표가 집계되며 격차가 좁혀졌습니다. 최종 당선자는 재검표와 이의 심사를 거쳐 7월 중순에야 확정될 전망입니다. 페루국가선거심판원(JNE)은 과거에도 결선 투표 후 당선인 확정까지 43일이 걸린 전례가 있다며 신중한 절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7월 28일 취임을 앞둔 차기 대통령에게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깨진 선거 신뢰를 회복하는 과제가 함께 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