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화된 협력의 첫 발걸음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 가능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동 지역에 발이 묶였던 한국인 11명과 외국인 배우자 1명이 일본 정부의 전세기를 통해 안전하게 탈출했습니다. 지난 11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출발한 일본 전세기는 오후 도쿄 나리타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는데요. 이번 사건은 중동 정세 불안 속에서 한일 양국이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체계적으로 협력한 첫 번째 공식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전쟁 발발 이후 외국인이 일본 정부 전세기에 탑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하며 특별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번 대피 성사는 단순한 우발적 도움이 아닌, 양국 외교 당국 간의 치밀한 소통과 준비의 결과물입니다. 외교부는 일본 외무성 및 현지 공관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한국인들의 탑승 절차를 지원했습니다. 일본 측은 자국민 대피를 위해 마련한 전세기에 빈 좌석이 있음을 한국 측에 알렸고, 이를 계기로 대피를 희망하는 한국인 가족들이 합류하게 된 것이죠. 현지 시간으로 3월 11일 오전, 아이치현 고마키 기지에서 이륙한 일본 항공자위대 항공기는 자국민 보호 임무와 함께 이 같은 국제적 협력 임무도 수행하게 된 셈입니다.
각서에서 현장으로, 협력의 뿌리
이런 신속한 협력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확고한 제도적 토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로 지난 2024년 9월 체결된 한일 양국 간 ‘제3국 내 재외국민보호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입니다. 이 각서는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 위기 상황이 제3국에서 발생할 경우, 양국이 정보를 교환하고 자국민 철수 과정에서 상호 협력하기로 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은 호주, 캐나다와도 유사한 협정을 맺었지만, 실제 협력이 실행에 옮겨진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양국 간의 이런 협력은 이번이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닙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 당시, 한국 정부는 군 수송기를 파견해 자국민 163명과 함께 일본인 51명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일본 정부도 자위대 수송기를 통해 자국민을 귀국시키는 과정에서 한국인 18명을 동승시켰죠. 이러한 선례가 양국 간 신뢰를 쌓았고, 결국 공식적인 협력 각서 체결과 이번 같은 원활한 실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입니다. 과거의 ‘은혜’가 3년 만에 또 다른 형태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구축해 온 협력 체계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타당합니다.
진행 중인 대피 작전과 향후 과제
한국 정부의 대응은 일본 전세기 협력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외교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주변국에 체류 중인 국민들의 안전한 귀국을 총괄 지원하기 위해 ‘정부합동 신속대응팀’을 현지에 파견했습니다. 이재웅 전 외교부 대변인이 단장을 맡은 이 팀은 외교부와 경찰청 인력으로 구성되어, 사우디 리야드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영공 폐쇄 등으로 항공편 운항이 중단된 이라크, 쿠웨이트, 바레인 등 인근 국가에서 사우디로 대피하는 한국인들의 이동을 지원하고, 이들의 최종 귀국 절차를 원활하게 돕는 것입니다.
현재 쿠웨이트에서는 주쿠웨이트대사관의 지원 차량을 통해 한국인 29명과 외국인 1명이 사우디로 이동했으며, 이라크에서도 지난 9일부터 10일까지 주재 대사관들의 도움으로 총 25명의 한국인이 사우디에 도착한 상태입니다. 신속대응팀은 이처럼 사우디로 집결하는 국민들에게 필요한 영사 지원을 제공하고, 추가 항공편 확보 등 귀국 경로를 마련하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일본 측은 다른 국가 국민에게도 남는 좌석을 제공할 의사를 밝혔지만, 아직까지 추가 희망자는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중동 정세가 여전히 불안정한 만큼,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국제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