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을 겪은 두 나라의 격상
이재명 대통령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29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관계를 '강화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끌어올렸습니다. 1883년 수교 이후 처음 붙는 이름표인데요. 두 정상은 분단의 아픔을 딛고 제조 강국으로 성장한 공통의 경험을 앞세워 협력의 폭을 넓히기로 했습니다.
회담장에서는 세 건의 문서가 서명됐습니다. 경제·하이테크 파트너십 프레임워크 공동의향서와 에너지 파트너십 구축 공동의향서, 이중과세방지협정 개정 의정서입니다. 교역 중심이던 관계를 첨단산업과 공급망, 경제안보까지 확장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한 셈입니다.
숫자로 드러난 협력의 무게
배경에는 규모가 있습니다. 메르츠 총리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15주년을 언급하며 관세의 약 99%가 철폐됐고 교역 규모는 2011년 이후 두 배 이상 늘어 1300억 유로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연간 300억 달러를 넘는 한·독 교역액도 회담에서 다시 확인됐습니다.
협력의 축은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입니다. 자동차와 배터리 같은 기존 주력 산업에 더해 양자·바이오·우주, 스타트업 생태계까지 공동 연구 범위를 넓혔습니다. 인공지능 안보연구소 간 협력과 '스타트업 다리' 구축도 함께 발표됐습니다.
핵심 광물과 에너지 안보를 공동 대응 항목으로 올린 점도 눈에 띕니다. 인공지능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에너지 협력을 정례 협의체로 묶기로 한 대목이 대표적입니다. 기업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투자할 수 있도록 조세 정보 교환과 조세회피 방지 규정을 손본 점도 실질적인 변화로 꼽힙니다.
안보로 번진 협력, 남은 숙제
안보 분야의 진전이 더 뚜렷합니다. 양국은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조속히 추진하기로 했고, 정기 군사 교류와 훈련 협력, 국방 당국 간 실무회의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방산기업 간 합작과 공동개발 기회를 발굴한다는 방침도 담겼습니다.
메르츠 총리는 북한군이 돈바스에서 전투를 벌이는 상황을 두고 유럽의 자유를 위협하는 사안이라며 한국과 유럽의 안보가 맞닿아 있다고 짚었습니다. 그는 30일 비무장지대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분단국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을 안보 대화의 접점으로 삼은 겁니다.
관건은 실행입니다. 이 대통령은 유럽연합의 산업가속화법으로 한국 기업이 역내 기업과 다른 대우를 받지 않도록 독일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비자와 체류허가 기간 단축도 과제로 남았습니다. 메르츠 총리는 내년 가을 베를린 디지털 정상회의에 이 대통령을 초청했고, 이 대통령은 적절한 시기에 방문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만찬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장인화 포스코 회장 등 양국 기업인 60여 명이 참석해 후속 협력의 물꼬를 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