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린 반성 한 해 만에 사라지다
2026년 8월 15일, 일본이 패전 81주년을 맞았습니다. 이날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평화를 강조하는 한편,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이라는 표현은 의도적으로 빼버렸습니다. 이는 지난해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13년 만에 되살렸던 '전쟁의 반성과 교훈'과 '부전의 맹세'를 다시 없앤 겁니다. 외신들은 이를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의 보수적 기조로 회귀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시바 전 총리가 반성 표현을 복원하기 전인 2013년부터 아베 전 총리가 이 표현을 중단한 뒤로, 일본의 역사 인식은 좌우로 요동쳐 왔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추도사에서 '전쟁의 참상은 결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여기에는 주체가 빠진 소극적 표현이었습니다. 반면 나루히토 일왕은 즉위 이후 매년 이어오던 것처럼 이번에도 '깊은 반성'을 언급하며 총리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야스쿠니 참배와 공물 봉납
추도식과 맞물려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싼 움직임도 주목받았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직접 참배하지는 않았지만,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공물 대금을 봉납했습니다. 총리직을 수행하기 전에는 매년 8월 15일을 맞아 참배를 이어왔던 터라 이번 결정은 한국과 중국을 의식한 외교적 고려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내각 각료들의 행보는 달랐습니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을 비롯해 경제안보담당상 등 현직 각료 네 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는데요. 현직 방위상의 참배는 2년 만의 일이며, 자민당 핵심 간부들까지 단체로 참배에 나서 이례적인 행렬을 이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 내부에서도 공인으로서의 역할보다 우파 지지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겹겹이 쌓인 우려
이번 일본 정부의 행보에 대해 한국과 중국은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야스쿠니 신사를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이번 참배와 봉납이 전후 국제 질서에 대한 도발이라고 규탄했습니다. 특히 올해가 도쿄재판 80주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일본의 진정한 반성을 촉구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여야가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시대착오적 도발이라며 일본이 제국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 피해자들 앞에서 사죄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의힘 역시 양국 간 신뢰를 훼손하는 행동이라며 엄중한 대응을 촉구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 협력을 모색해야 할 시기에 역사 인식을 둘러싼 온도 차는 외교 관계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이 단순한 국내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면, 주변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