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역 판도 변화 속 독일의 행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정상 교류를 넘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조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독일이 새로운 경제적 균형점을 찾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메르츠 총리는 방중 직전, EU의 강력한 통상보복 조치인 '무역 바주카포(ACI)' 사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미국에 대한 경고 성격의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이는 과거 미국과의 갈등을 우려하던 독일의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필요시 단호히 맞서겠다는 의지 변화를 보여줍니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에 이어 G7 국가 중 네 번째로 중국을 방문한 메르츠 총리의 행보는, 유럽 주요국들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과의 협력 채널을 다변화하려는 흐름을 적극 반영한 것입니다.
협력과 경계, 독일의 이중적 접근법
회담장에서는 협력과 우려가 동시에 오갔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유럽의 자립과 자강을 지지하며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유지를 강조했습니다. 메르츠 총리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중국이 에어버스 항공기를 최대 120대 추가 주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경제 협력 확대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죠. 그러나 표면 아래에는 깊은 걱정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메르츠 총리는 리창 총리와의 별도 회담에서 대중 무역 적자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의 위안화 저평가, 보조금, 과잉생산 등이 초래하는 무역 불균형 해소를 요구했습니다. 독일은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과의 경제적 밀접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고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번에 메르츠 총리를 따라간 폭스바겐, BMW 등 30여 개 독일 주요 기업 대표단의 동행은, 이러한 복잡한 관계 속에서도 실질적 협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독일 경제계의 현실적 판단을 보여줍니다.
제조업 강국의 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함의
이번 방중의 배경에는 독일 제조업의 심각한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독일 기계공학산업협회(VDMA)는 중국과의 경쟁 격화로 인해 독일 기계 산업의 고용 인원이 100만 명 선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자동차 수출은 급감한 반면, 독일 기업들의 대중 직접투자는 오히려 증가하며 '중국을 위한 중국 내 생산' 전략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급망 리스크 완화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순된 움직임이에요. EU가 중국산 커넥티드 카의 데이터 수집을 제한하고 공급망 실사법을 가동하는 등 기술 안보 장벽을 높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독일의 고민은 단순한 무역 적자 문제를 넘어, 경제적 실리와 안보적 위협을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이러한 독일의 행보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 중요한 풍향계가 될 것입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독일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찾아내는 새로운 균형 모델은 향후 국제 경제 질서의 한 축을 결정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