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만으론 부족한 이유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와 과천 경마공원 개발 등 전방위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계획들이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데요. 특히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구역에서는 이주비 마련이 최대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올해 초 조사한 이주 예정 구역 43곳 가운데 39곳, 약 3만 1000가구가 이주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은행권 이주비 대출 잔액은 2년 새 2조 원 가까이 줄었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 발급 가구는 오히려 늘어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주비 조달 실패는 단순히 이주 지연을 넘어 철거와 착공 전체를 멈춰 세우는 연쇄 효과를 낳습니다. 금융비용과 공사비 부담이 커지면 조합원 분담금까지 오르는 구조라, 가계대출 규제가 공급 전반을 옥죄고 있습니다.
숫자로 보는 공급 가뭄
수도권 주택 공급은 이미 3년간 28만 호 이상 부족했습니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 매년 26만~27만 호의 수요가 있었지만, 실제 준공 실적은 이에 크게 못 미쳤고 2026년 상반기 착공 실적 역시 목표치의 24% 수준에 그쳤습니다. 아파트 착공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지만, 오피스텔과 빌라 등 비아파트 착공은 급감했는데요. 전세사기 여파로 임차인 보증금이 사실상 공급자 금융 역할을 하던 구조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서울 강남·서초 일대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고 있지만, 택지 확보와 실제 주택 입주는 다른 문제입니다. LH 부채가 올해 19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공공 주도 개발 역시 재무적 부담이 큽니다. 비아파트 시장은 중소형 사업자 중심인데, 이들을 위한 금융·세제·보증 종합 대책이 없다면 공급 공백은 메워지지 않습니다.
현장의 목소리와 정치적 힘겨루기
과천 경마공원 이전 사업은 정부와 한국마사회 간의 시차 문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2029년 착공을 목표로 9,800세대를 조성하려 하지만, 마사회는 이전에만 16년 넘게 걸린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전 비용 2조 4천억 원을 둘러싼 재정 분담 공방도 계속되고 있고, 재정 비상을 선언한 경기도는 레저세 활용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과천 주민들 역시 남태령 터널 정체와 인프라 부족을 이유로 주택 공급안 철회를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습니다.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행정력과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과천 공급 계획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에서 보여준 과감한 추진력을 부동산 공급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현재 정책이 실천 단계에서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주택 공급은 단순히 땅을 풀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주비 대출의 유연화, 비아파트 생태계 복원, 지역 주민과 공공기관 간 이해관계 조율이라는 숙제가 함께 풀려야 비로소 안정적 공급이 가능합니다. 정부의 계획이 실제 집값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세부 실행력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