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깜깜이가 아닌 주유소 정산
SK에너지가 정유 업계 최초로 주유소 공급가격을 일주일 전에 고지하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월요일에 확정된 가격을 고지하면 화요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해당 금액을 적용하는 방식인데요. 이는 기존의 사후정산 방식을 완전히 뒤집는 변화입니다.
그동안 국내 정유사들은 휘발유와 경유를 주유소에 먼저 공급한 뒤, 한 달가량 지나서야 국제유가를 반영해 최종 가격을 확정하는 방식을 써 왔습니다. 주유소 입장에서는 정확한 매입 단가를 알 수 없어 이른바 '깜깜이 정산'이라는 불만이 컸고, 국제유가 상승 시 성급한 판매가 인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사전고지제는 주유소의 가격 예측 가능성을 높여 소비자 부담 완화에도 기여할 전망입니다.
경유값 50원 내리는 정유사들
SK에너지의 선제적 조치는 지난 4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정유 4사와 합의한 사후정산 제도 폐지의 실효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미국과 이란 전쟁 이후 급등한 기름값이 사후정산제와 맞물려 시장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커졌던 탓입니다.
이와 함께 SK에너지는 생계형 운수 사업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차량용 경유 판매 가격을 리터당 50원 할인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HD현대오일뱅크도 상생협약에 동참해 경유 공급가격을 같은 폭으로 인하했는데요. 직영주유소뿐 아니라 자영 주유소에도 할인 지원금을 지급하며 파급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정유사들의 공급가 인하가 일선 주유소의 판매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확산되는 상생협약과 남은 과제
다만 모든 정유사가 동참한 것은 아닙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하지 않은 채 검토 중인 상황입니다. 일선 주유소 업주들은 참여하지 않은 정유사들도 조속히 동참해 시장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유소 측에서는 정유사의 공급가 인하가 재고 부담과 마진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공급가가 내려갈 때 기존에 비싼 가격에 구매한 재고를 처리해야 하는 주유소의 부담은 적지 않습니다. 가격 인하가 확산되려면 정유사와 주유소 간의 상생협약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체계로 자리 잡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