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이어진 당일치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월 24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당일치기로 다녀왔습니다. 6·25전쟁 참전 기념일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고, 12년 넘게 봉쇄됐던 신압록강대교를 육로로 건넜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아닌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상대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과거 방중 때마다 시 주석과 회담했던 관행과 비교하면 의전 수준이 한 단계 낮아진 셈입니다.
일정은 추모와 산업 시찰 두 갈래였습니다. 왕 주석과 함께 항미원조기념관에서 중국군 전사자를 추모했고, 단둥의 버스 조립 공장인 황하이자동차도 둘러봤습니다. 북한은 추모가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전기버스 조립 같은 산업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경제가 급한 북, 셈법이 다른 중국
배경에는 북한의 경제 사정이 있습니다. 가발과 속눈썹 등 소규모 수출에 기대는 구조를 벗어나려면 국경 무역과 산업 지원이 절실한 처지죠. 신압록강대교 개통으로 단둥과 신의주 사이 화물차 이동이 가능해졌지만,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탓에 통행 속도는 시속 30km 이하로 묶여 있습니다. '혈맹'을 강조한 것도 제재의 틀을 넘어서는 지원을 끌어내려는 신호로 읽힙니다.
중국의 태도는 한발 물러서 있습니다. 외교부 대변인은 "북중은 우호적인 이웃 국가"라며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의 발전은 확고부동한 전략적 방침"이라고만 언급했습니다. 방문이 중국 측 초청인지 북한 측 제안인지도 밝히지 않았죠.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미·중 관계와 북한에 대한 영향력까지 함께 저울질하는 입장입니다.
11월 APEC 앞에 놓인 변수
관심은 다음 달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로 옮겨갑니다. 이번 방중을 북미 접촉의 사전 정지 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박종철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정상 간 만남 가능성은 51% 정도로 평가했습니다.
통일부는 이번 방문이 한반도 평화와 대화 재개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북한은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비무장지대 지뢰 사고를 두고 남측을 비난하는 서한을 유엔 안보리에 보내는 등 압박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국 간 대화가 막힌 만큼 스포츠 교류 같은 민간 채널을 주목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남북 관계의 물꼬는 북중 밀착과 북미 접촉이 어떻게 맞물리느냐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