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 앞에 선 장관들의 시각차
반도체 메가특구를 둘러싼 정부의 속도전이 부처 간 시각차로 제동을 걸리고 있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첨단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요. 특히 중국 IT 기업의 996 근무 사례를 들며, 일하려는 젊은 인재들의 의지가 제도적으로 막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행 제도 하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역대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두 부처 장관의 공개적인 의견 대립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반도체 경쟁력 확보의 골든타임을 앞당기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이 반복되면서 호남반도체 공장의 적기 생산 목표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할 의지"와 "건강권" 사이
산업부의 특례 추진에 대해 반도체공학회는 찬성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학회는 연구개발직의 성과가 근무 시간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시간 기반이 아닌 성과 중심의 유연한 평가 체계와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경직된 규제가 오히려 기술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반면 조국혁신당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건강권 침해라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혁신당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SK하이닉스가 특별연장근로 인가 0건으로 삼성전자를 앞섰다는 점을 근거로, 장시간 노동과 경쟁력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유해화학물질 노출 환경에서 장시간 과로를 강요하는 것은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라며, 메가특구특별법에 안전 대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특례 없이도 쌓아온 성적표
사실 현행법상 반도체 연구개발 업체는 고용노동부 인가를 받으면 주 64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합니다. 이미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시행 중인데, 추가 특례가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됩니다. 산업부는 소득 상위 3% 연구개발 및 관리직을 대상으로 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것이 타 산업으로 확산될 경우 주 52시간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건강권과 산업 경쟁력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정부 안에서는 명확한 정책 결정이 시급해 보입니다. 노동계는 번아웃과 인재 유출이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산업계는 글로벌 추격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유연성이 필수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 갈등이 풀리지 않는 한, 대통령이 원하는 반도체 클러스터의 신속한 조성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