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 원유의 뒤편, 비밀 선단의 실체
미국이 이란산 원유를 몰래 운송해온 중국과 홍콩 소재 해운사들을 연쇄 제재했습니다. 미 국무부와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은 지난 7월 29일부터 30일 사이에 중국 본토의 치항선박관리를 비롯해 홍콩 해운사 5곳, 마셜제도 업체 2곳 등 총 8개사와 유조선 8척을 제재 명단에 올렸는데요. 이들은 올해에만 수백만 배럴의 이란산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을 중국과 아랍에미리트 등으로 옮기며 이란 정권의 주요 자금줄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란은 서방의 경제 제재를 피하기 위해 국적을 위장한 선박과 불투명한 유령회사, 해상 환적 등을 활용한 이른바 비밀 선단을 오래도록 운용해 왔습니다. 미국은 올해 초부터 이와 관련된 선박 100여 척을 추적해 왔으며, 이번에 홍콩과 중국 본토의 위장 해운망까지 광범위하게 겨냥했습니다. 토미 피곳 국무부 대변인은 이 제재가 이란 항구와 해안선에 대한 해군 봉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카드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물리적 통제와 금융 압박을 동시에 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호르무즈를 움켜쥔 강제 보험망
이번 제재는 불법 원유 수송만을 겨냥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상선에게 사실상 강제로 보험 가입을 요구한 기관들도 동시에 제재했습니다. 페르시아만 해상보험회사와 호르무즈세이프 해상서비스청이 그 대상인데, 특히 호르무즈세이프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으로 보험료를 받으며 국제 금융 제재를 우회하려 했던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현금 확보에 필사적인 이란 정권이 글로벌 해상무역을 인질로 삼아 테러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물리적 해상 봉쇄와 금융 자산 동결을 결합해 이란의 석유 수출길을 복합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 정책 아래에서 이루어진 이번 조치는 중동 해상운송과 국제 해상보험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전망입니다.
중동 에너지 지도를 둘러싼 셈법
미국의 이번 제재는 저렴한 이란산 원유를 대량으로 들여오며 에너지 수급망을 확보해 온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제재 대상 기업과 거래하는 제3국 금융기관과 기업까지 처벌할 수 있는 2차 제재 가능성까지 경고하며 중국의 정유사와 해운망을 위축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압박은 중국이 그동안 누려온 헐값 원유의 경제적 이익을 소멸시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당연히 중국 측의 반발도 예상됩니다. 중국이 미국의 단독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과의 거래를 이어간다면 중동을 둘러싼 미중 패권 대립은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헐값 이란 원유의 유통이 막히면 중국 정유사들의 대체 원유 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제 유가 상승 압력도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이란에는 자금난을, 중국에는 안보 지불 대가를 요구하며 중동 주도권을 쥐려는 셈법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