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장에서 터진 '싸움 걸면 싸우겠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47년 만의 미-이란 최고위급 회담은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회담이 결렬된 직후, 이란 협상단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강경한 어조로 미국을 향해 맞섰습니다. 그는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트럼프 쪽의 위협은 이란 국민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일축했는데요. 더 나아가 "미국이 싸움을 걸어온다면 우리도 맞서 싸울 것이며, 논리를 가지고 나온다면 논리로 응답하겠다"고 선을 확실히 그었습니다. 이 발언은 협상 테이블 밖에서도 양국 간의 깊은 골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쌓인 불신과 상처받은 국민 감정
갈리바프 의장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오랜 역사적 불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협상 기간 중에도 미국이 이란을 두 차례 공격했다고 주장하며, 지난 77년간 쌓인 불신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미국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더욱이 협상단이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지난 2월 미군 공습으로 희생된 초등학생 168명의 영정 사진과 유품이 실렸습니다. 협상단원 전원이 검은색 정장을 입고 참석한 것도 이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표시였죠. 이런 상징적인 행보는 협상에서 물러설 수 없는 국민적 감정과 피해를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읽힙니다. 미국 측은 해당 공습이 표적 설정 오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민간인을 고의로 타격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한 상태입니다.
상징으로 가득했던 협상장의 풍경
이번 회담 자체도 여러 면에서 상징성으로 무장했습니다. 미국은 기선 제압을 위해 300명이 넘는 초대형 협상단을 파견했고, 회담장에는 '평화를 위해 내린 커피'라는 문구가 새겨진 잔이 준비되는 등 평화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란 측의 전면적인 블랙 복장과 희생자 추모 퍼포먼스는 그러한 외교적 제스처와는 사뭇 다른 냉정한 현실을 드러냈습니다. 파키스탄 수도는 삼엄한 경비로 '유령 도시'가 되었지만, 정작 협상은 미국 측의 짧은 기자회견으로 불발이 선언되며 막을 내렸습니다. 양측의 접근법이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된 가운데, 신뢰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진전은 요원해 보입니다. 파키스탄은 중재 역할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향후 관계 개선의 열쇠는 여전히 미국이 과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인정하고 이란 국민의 신뢰를 얻을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