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까지 새어나간 영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병원 내부 영상이 해외 불법 음란물 사이트에 대거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산부인과와 성형외과, 한의원, 재활의학과 등에서 촬영된 최소 80건의 영상이 확인됐는데요. 서울 소재 산부인과 영상만 21건에 달합니다.
유출된 영상에는 환자가 대기실에서 진료실로 이동하고 옷을 갈아입는 장면, 초음파 검사와 시술 장면이 동선에 따라 편집돼 담겼습니다. 환자의 얼굴과 신체가 그대로 노출됐고 병원 이름까지 선명하게 찍혔습니다. 녹화 시점은 2022년 2월부터 2025년 11월까지로 파악됐습니다.
문제는 이 영상들이 의료법의 보안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촬영됐다는 점입니다. 현행 의료법은 수술실에만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고, 진료실이나 상담실, 대기실, 병실의 카메라는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숫자로 드러난 보안 사각지대
유출의 직접 원인으로는 의료기관이 자체 설치한 IP카메라가 지목됐습니다. 인터넷에 연결된 이 카메라들은 보안 기준이 미흡해 외부 침입에 취약했습니다. 반면 수술실 영상은 폐쇄망에 보관돼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의료기관 전반의 보안 실태도 함께 도마에 올랐습니다. 지난 5년간 정보 침해 사고가 6배 늘었는데, 263개 종합병원 가운데 16.7%는 보안 예산이 아예 없습니다. 기관당 평균 보안 인력도 0.9명에 그칩니다.
구체적 피해 사례도 나왔습니다. 강원대병원은 랜섬웨어 공격으로 4시간 50분 동안 진료가 중단됐고, 화순전남대병원은 298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습니다. 국가응급진료정보망은 올해 3건의 장애를 겪으며 최대 32시간 복구가 지연됐습니다. 2021년에는 북한 해킹 조직이 서울대병원에 침투해 83만 명의 보건의료정보를 빼낸 바 있습니다.
책임 공방과 남은 과제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보안 체계가 공격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인정했습니다. 경찰 수사와 함께 보안 점검을 강화하고, 의협과 병협에 자체 점검을 요청해 민관 합동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공격형 사이버 보안 도입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의료계의 시각은 다릅니다. 서울시의사회는 수술실 CCTV 의무화 시행 10년 만에 우려했던 유출 사고가 현실이 됐다며 제도 폐기를 요구했습니다. 환자와 의료진의 기본권 침해 위험이 실제로 드러난 만큼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국회에서는 제도 보완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허종식 의원은 수술실뿐 아니라 병원에 설치된 모든 영상기기에 보안 기준과 점검 의무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지아 의원은 공격형 사이버 보안이 제대로 도입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영상 유출 경로 규명과 재유포 차단, 피해자 보호까지 남은 과제가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