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에 대한 사법적 판단
대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는 판결을 최종 확정했습니다. 2017년 출간 당시부터 논란이 되었던 회고록의 내용이 허위 사실에 기반했다는 점을 명시한 건데요, 9년간 이어진 법정 공방에 마침표를 찍은 셈입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개인 간 명예훼손 소송을 넘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실 왜곡이 법적으로 어떤 책임을 지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판결에 따라 전두환 씨의 유족은 5·18 기념재단 등 4개 단체에 총 6000만 원,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에게 1000만 원 등 총 7000만 원의 배상 책임을 지게 됐습니다. 또한 회고록 내 특정 허위 내용 69개 항목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과 배포가 금지됩니다. 이번 결정은 사적인 회고록이라도 공인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할 경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겁니다.
회고록 논란과 법정 다툼의 흐름
논란의 시작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두환 씨는 퇴임 30주년을 맞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했고,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부정했습니다. 북한군 개입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했죠. 특히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지칭한 부분은 큰 사회적 공분을 샀습니다.
이에 5·18기념재단과 관련 단체, 유족들은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형사 재판에서는 사자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되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기도 했으나, 전두환 씨의 사망으로 공소기각 처리됐습니다. 민사 소송은 1심과 2심을 거치며 원고 측 일부 승소 판결이 이어졌는데요, 재판부는 회고록의 주장이 객관적 근거가 없는 허위 사실이라고 반복해서 판시했습니다. 헬기 사격 부정과 같은 내용은 당시 국방부 조사 기록 등 확증된 자료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죠.
전두환 씨 측은 상고를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수용했습니다. 허위 사실의 적시가 인정되고, 그것이 5·18 단체들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했으며 조비오 신부 유족의 추모 감정을 해쳤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다만,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일부 진술은 의견 표명으로 볼 수 있다며 삭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습니다.
판결이 남기는 사회적 의미
이번 대법원 판결은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역사 왜곡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최고 책임자가 공식 기록과 배치되는 주장을 펼칠 때, 그 책임을 묻는 길을 열었죠. 강기정 광주시장이 이번 판결을 행정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5·18 진상 규명 작업에 일정한 종지부를 찍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법정에서 헬기 사격 관련 탄흔 기록 등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고, ‘장갑차 사망 사건’에 대한 신군부 측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역사 왜곡이 바로잡혀 다행”이라며 앞으로의 반복을 우려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번 판결은 역사적 진실과 개인의 표현 자유 사이에서 법이 어디에 무게를 두는지를 보여준 사례가 됐습니다. 물론, 회고록 자체의 출판 금지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논쟁의 여지를 남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허위 사실을 근거로 한 명예훼손과 역사 왜곡이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선 불법 행위일 수 있다는 점을 사회에 각인시킨 점은 분명합니다. 9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내려진 이 판결이 향후 유사한 역사 논란에 어떤 기준이 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