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유 방출 없는 4~5월
중동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석유 수급 상황이 한숨 돌릴 여유를 찾고 있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과 13일 연이어 정부 비축유를 방출하지 않고도 4월과 5월을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같은 자신감의 배경에는 확보된 원유 물량이 있습니다. 5월 기준 평시 도입량의 약 80% 수준까지 원유 확보율이 올라섰는데요, 지난주 대비 10%포인트 가량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러한 물량과 정유사들의 재고를 감안할 때, 당장은 비축유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당정은 이와 함께 민간 정유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비축유 스왑 물량 3천만 배럴을 추가로 확보했습니다. 이는 정부 비축유를 털지 않고도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대체 물량으로, 수급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실질적인 안전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소비자 체감물가인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여전히 리터당 2천 원을 웃도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안도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황입니다.
수입선 다변화와 해상 호위
정부가 이처럼 자신감을 내비친 데는 중동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한몫했습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카자흐스탄과의 원유 도입 협의 진전입니다. 김정관 장관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현지를 방문한 결과, 다음 주 초 구체적인 물량이 발표될 예정입니다.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원유를 들여온다면 공급망이 훨씬 튼튼해질 수 있는 거죠. 한편, 기존 주요 공급처인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는 한국에 대한 석유 최우선 배정 약속을 받아내는 성과도 거뒀습니다.
해상 운송로의 안전 문제도 적극적으로 뚫고 나가고 있습니다. 분쟁 지역인 홍해의 사우디아라비아 얀부항을 지나는 한국 선박들을 위해 청해부대 소속 대조영함의 호위 방안이 논의 중입니다. 아직 호르무즈 해협에 억류된 한국향 원유 1400만 배럴(유조선 7척 분)의 운명은 불확실하지만,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읽히기도 합니다.
핵심 원료부터 생활용품까지
에너지 위기는 원유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의 기초 원료 수급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석유화학의 주원료이자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인 나프타의 공급 불안이 컸는데요, 정부는 4~5월 중 나프타 물량 회복이 80% 수준까지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를 위해 나프타 도입 단가 상승분의 50%를 정부가 보조하기로 하면서, 관련 추경 예산을 2천억 원 이상 증액하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헬륨가스의 경우, 미국산으로의 공급선 대체를 이미 완료해 공장 가동 차질을 막았다고 합니다.
일상생활과 직결된 품목들에 대한 관리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의료용품과 생필품 등 50개 품목에 대해 일일 수급 모니터링 체제를 가동 중입니다. 한때 사재기 우려가 있었던 종량제 봉투의 경우, 현재 대부분 지자체가 3~5개월 분량의 재고를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고 사재기 현상은 진정된 상태입니다. 더 나아가 종량제 봉투 생산 시 재생 원료 사용 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되어, 자원 순환과 수급 안정을 동시에 꾀하고 있습니다.
당정은 이 모든 대응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중동 사태 관련 추경 예산의 80%를 6월까지 집행하는 신속 실행 계획도 세웠습니다. 국제 정세가 여전히 불안정한 만큼, 정부의 이러한 다각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이 실제 소비자 물가 안정과 산업계의 숨통을 얼마나 틔워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