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열풍이 만든 공백
AI 수요가 폭발하면서 메모리 시장은 최고의 호황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메모리 시장을 이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투자 확장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반도체 다운사이클로 인한 재무적 충격에서 비롯된 신중함입니다. 2022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불황으로 두 회사 모두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거든요.
가격은 이미 급등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최근 일부 메모리칩 공급가를 9월 대비 최대 60% 인상했는데, 32GB DDR5 메모리칩 모듈 가격이 239달러로 치솟았습니다. 다른 용량 제품들도 30~50% 가까이 오르는 등 공급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레거시 메모리 대란 경고
문제는 AI 수요가 특정 부문에 집중되면서 발생하는 불균형입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고수익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에 모든 역량을 쏟고 있습니다. HBM은 일반 D램보다 생산에 더 많은 시설과 복잡한 공정이 필요합니다. 결국 기존 DDR4 같은 레거시 메모리 생산 라인이 HBM 전환되면서 공급 공백이 생기고 있는 거죠.
중국 파운드리 기업 SMIC는 이런 상황을 두고 '2026년 레거시 메모리 대란'을 공식 경고했습니다. 자동차, 산업기기, 가전 등 전통 산업은 제품 설계 주기가 길어 레거시 메모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이들 분야가 본격적인 공급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겁니다.
투자 확대를 망설이는 이유
내년 D램 메모리 부문 투자 전망을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전체 투자 증가율은 14%에 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삼성전자는 11%, SK하이닉스는 17% 증가로 예측되는데, 이는 마이크론의 23% 증가율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메모리 산업의 투자 리스크는 생각보다 큽니다. 신규 라인을 구축해 실제 양산에 돌입하기까지 최소 2년 이상이 소요됩니다. 지금 투자를 확대해도 수요가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는 구조죠. 게다가 HBM 생산은 일반 D램 대비 효율이 낮아 전체 생산량 감소로 이어집니다.
양극화되는 메모리 시장
이제 메모리 시장은 AI와 비(非)AI로 명확히 분열되고 있습니다. AI 공급망은 고성능·고수익 시장을 형성하는 반면, 비AI 공급망은 전통 제조업을 지탱하는 레거시 메모리 시장으로 나뉘었습니다. SMIC는 미국 제재로 HBM 생산이 불가능하지만, 오히려 레거시 메모리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퓨전월드와이드의 토비 고너먼 대표는 "대형 서버 제조사와 데이터센터 건설 주체들이 메모리 제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일부 고객사들은 패닉 바잉까지 나타나고 있어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메모리 시장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을 보일 전망입니다. 투자 신중과 공급 부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주요 기업들의 과제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