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까지 속인 AI 위조 서류
사기 혐의를 받던 20대 남성이 인공지능(AI)으로 위조한 은행 잔고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해 구속을 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실제 계좌 잔고는 고작 23원에 불과했지만, AI 기술을 활용해 9억 원이 있는 것처럼 꾸민 서류로 재판부를 속인 겁니다. 이 남성은 의사 자격증과 가상화폐 거래 내역까지 생성형 AI로 만들어 투자자들을 속여 3억 2천여만 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법원이 AI 생성 가짜 문서에 속아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 사건은, 기술 발전이 범죄 수단으로 악용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사법 시스템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위조 기술
이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위조의 난이도가 극도로 낮아졌다는 사실입니다. 피의자는 챗GPT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생성형 AI 도구를 이용해 간단한 명령만으로 금융기관 공문서를 위조했습니다. 의사국가시험 합격증, 가상화폐 보유 내역 증명서 등 다른 서류들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문제는 이런 AI 플랫폼들이 법적 강제력이 부족한 ‘AI 생성물 표시제’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어, 생성물과 실제 문서의 구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전문 지식과 장비가 필요했던 문서 위조가 이제는 누구나 몇 번의 클릭으로 가능해진 셈이죠.
이러한 접근성은 범죄의 문턱을 크게 낮췄습니다. 동의대 인공지능학과 김성희 교수는 공문서 위조와 관련된 검증 체계 및 책임 구조, 생성형 AI의 바른 사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겨난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법원 시스템의 허점과 향후 과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법원 자체에 위조 문서를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판사 출신 변호사에 따르면, 현재 법원은 피의자가 제출한 서류의 진위를 확인할 공식 절차가 없고, 기본적으로 피의자의 선의를 믿는 것에 기초해 판단한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피의자가 제출한 잔고증명서를 진본으로 간주하고, 전액 변제 의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결국 법원의 신뢰를 악용한 피의자는 약 2주간의 자유를 얻었지만, 피해자들은 약속된 변제를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검찰의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그대로 덮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피의자가 풀려난 후 변제를 이행하지 않자 검찰이 수사를 재개해 은행에 직접 확인을 요청했고, 계좌 잔고가 23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위조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에 문서위조 등 추가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를 재구속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검찰의 수사는 기본적으로 법원의 1차 판단을 뒤집는 '사후 확인'에 불과합니다. 법원 자체에서 위조 방지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 한, 유사한 사건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습니다.
법원은 아직 이 사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법 당국이 서류 진위 확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제도적 보완에 나서야 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AI 기술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법의 심판장이 가장 기본적인 증거의 진실성을 가려내지 못한다면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