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보수의 압승이 의미하는 것
칠레에서 4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습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실시된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공화당 후보가 약 59%의 득표율로 좌파 후보를 약 20% 포인트 차이로 꺾고 당선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유사한 정치 스타일로 ‘칠레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압승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남미 전역의 정치 흐름을 가속화할 신호탄으로 해석됩니다.
카스트 당선인은 변호사 출신으로 하원 의원을 네 차례 지낸 중량급 정치인입니다. 그의 개인사도 주목받는데, 부친은 독일 나치당원이었고, 형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 정권에서 장관을 지냈습니다. 그는 이번이 세 번째 대권 도전으로, ‘불법 이민자는 쫓아내겠다’는 강력한 메시지와 함께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유권자의 선택, 치안과 경제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이렇게 강력한 보수 인물이 선호된 배경에는 칠레 국민들의 뚜렷한 불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수도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베네수엘라 출신 갱단의 유입이 늘며 강력 범죄가 급증했고, 경제 성장도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좌파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의 임기 동안 해결되지 않은 이 두 가지 과제가, 유권자들로 하여금 ‘강한 리더십’을 외치는 카스트 후보에게 표를 던지게 만든 결정적 동력이었습니다.
정치학자들은 유권자들이 기존 좌파 진영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 카스트 후보를 ‘친숙한’ 대안으로 인식했다고 분석합니다. 그의 공약은 유권자의 불안감을 정확히 짚었습니다. 조직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군의 치안 역할 확대와 비상사태 선포 가능성을 언급했고, 엘살바도르식 대형 교도소 건설로 갱단원을 대거 수감하겠다고 했습니다.
‘시장 경제주의 회귀’와 국내외적 도전
경제 정책에서도 카스트 당선인의 방향은 확실합니다. 그는 공공 지출 축소,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노동법 유연화, 국영기업 민영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는 칠레 경제를 다시 ‘남미의 모범생’으로 만들겠다는 ‘시장 경제주의로의 회귀’를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업 친화적이지만, 복지 축소와 불평등 심화에 대한 우려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당선인의 앞길이 순탄치 만은 않습니다. 첫째, 극심하게 양극화된 칠레 사회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가 과제입니다. 그의 강경 발언은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반대 진영의 반발도 거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의회에서 여소야대 구도가 예상되어, 그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온건 우파 세력과의 협상과 타협이 필수적입니다.
남미를 휩쓰는 ‘블루 타이드’의 한 축으로
칠레의 정치적 전환은 남미 대륙 전체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등에서 차례로 범보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는 ‘블루 타이드(Blue Tide)’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칠레라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국가까지 이 흐름에 합류함으로써, 남미의 정치적 중심이 우파로 쏠리는 현상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입니다.
카스트 당선인은 내년 3월 11일 공식 취임합니다. 그의 4년 임기는 강력한 치안과 경제 회생이라는 국민의 염원을 실현할 수 있을지, 아니면 사회적 갈등만을 심화시킬지에 따라 남미 정치의 새로운 방향타가 될 것입니다. 그의 선택은 칠레를 넘어, 전체 대륙의 정치 지형을 재편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