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높은 벽, 일본의 좁은 길
일본이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일단의 숨통을 틔웠습니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이 방일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에게 일본의 방위비 증액 계획을 설명하며, 추가적인 '방위비 청구서'를 피하는 데는 성공했는데요. 하지만 진짜 고비는 이제부터입니다. 미국이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GDP 대비 3.5% 수준의 방위비는 현재 일본 방위예산의 약 3배에 달하는 30조 엔 규모라서, 재원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원래 2027년까지 달성하기로 했던 GDP 대비 방위비 2% 목표를 2025년으로 앞당겼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기대치는 이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죠. 다카이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고이즈미 방위상이 헤그세스 장관에게 각각 방위력 강화 의지를 피력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우호적 제스처 속에 숨은 계산
흥미로운 것은 양국 관계를 돈독하게 보여주는 일련의 제스처였습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헤그세스 장관에게 요코스카 명물인 '스카잔' 점퍼를 선물했는데요. 미군 병사들이 예전에 기념품으로 만들던 이 자수 점퍼는 매와 이름이 새겨진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 점퍼를 입은 사진을 SNS에 게시하며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죠.
이런 친밀한 교류는 일본이 미국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전략적 접촉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 자리에서 방위 예산 확대 계획과 안보 문서 개정 의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미국으로부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공급 속도 향상을 약속받으며 군사력 강화에 한 걸음 더 나아갔죠.
예산의 벽, 넘을 수 있을까
문제는 재원입니다. 일본 정부 예산의 70%가 이미 사회보장 비용과 국채 관련 지출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거대한 규모의 방위비를 추가로 끼워 넣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인데요. 방위비 증액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길은 소득세 인상이나 국채 추가 발행 등 한정되어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법인세와 담뱃세 인상을 결정한 바 있지만, 가장 민감한 소득세 증세 시점은 아직 미정입니다. 오히려 정치권 내에서는 소비세 감세와 휘발유세 인하 논의가 활발한 상황이라, 증세 정책을 추진하기는 정치적으로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앞으로 남은 과제들
일각에서는 국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어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닛케이는 방위비 30조 엔 확보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하며, 재원과 인재 확보 방안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일본은 안보와 재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난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의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방위력 강화는 국가적 과제이지만, 그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결국 공허한 구호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죠. 일본의 선택이 동북아 안보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