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뿌리 깊은 '태움' 문제
2024년 6월, 경기 광주시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강수빈 간호사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숨진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반복되어 온 이른바 '태움' 문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2024년 실태조사에서 보건·복지 분야 종사자의 괴롭힘 경험률은 25%로 업종 중 가장 높았고,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신고 비중 역시 16%로 가장 컸습니다. 병원 안의 괴롭힘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이런 문제의 뿌리는 깊습니다. 병원 현장에서는 신규 간호사 상당수가 배치 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 부담 속에서 선배들의 압박과 위계적 조직문화는 쉽게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설문조사에서 인권 침해를 신고한 뒤에도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불이익을 우려해 참고 넘겼다는 응답이 77%를 넘었다는 점은 현장의 무력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정부와 현장이 함께 만든 대응 체계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가 병원계와 간호계와 함께 손을 잡았습니다. 양 부처를 비롯한 6개 기관은 '일하고 싶은 안전한 병원 만들기'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보건의료 일터혁신 협의체'를 구성했습니다. 반기마다 이행 상황을 점검하며 병원 내 괴롭힘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로 한 것입니다. 특히 입사 3년 미만의 저연차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특별진단은 이번 협약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개선 의지가 있는 병원에는 대한병원협회 추천을 통해 조직문화 진단과 컨설팅을 신속하게 지원하고, 초기 비용 부담도 덜어주기로 했습니다. 반면 진단 결과 위험도가 높은 병원이 개선 권고를 거부할 경우에는 근로감독으로 연계하는 강경 대응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간호사 SOS 지원창구 기능을 확대하고 복지부와 간호협회가 파악한 문제 병원 정보를 노동부와 공유해 신고와 감독의 연결성을 강화했습니다.
구조적 문제 해결을 향한 과제
물론 괴롭힘을 뿌리뽑으려면 제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근본적인 원인인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부는 대학병원 간호사까지 실노동시간 단축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의료기관별 적정 간호인력 배치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임금 감소 없이 근무시간을 줄이는 '워라밸+4.5 프로젝트'를 의료 현장까지 확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협약은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이 병원 내 조직문화와 근무환경의 근본적 개선을 주문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의료기관 평가 지표에 괴롭힘 예방 및 관리체계 마련 여부를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보건의료인이 존중받는 환경이 환자의 안전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제도적 보완과 더불어 현장 문화의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