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과 햇살을 그린 팝아트 거장의 마지막
데이비드 호크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 거장은 2026년 6월 11일, 런던 자택에서 89세 생일을 한 달여 앞두고 평화롭게 마지막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홍보 담당자는 별세 소식을 전하며,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한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등을 돌렸다고 밝혔습니다.
1937년 영국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난 호크니는 런던 왕립예술대를 졸업한 뒤 1960년대 팝아트 운동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강렬한 햇빛과 푸른 수영장, 야자수가 어우러진 풍경을 화폭에 담으며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죠. 특히 1967년작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은 현대미술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은 2018년 뉴욕 경매에서 9,030만 달러에 낙찰되며 당시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처럼 호크니는 예술적 가치와 시장적 가치를 동시에 입증한 몇 안 되는 작가였습니다.
60년 넘는 창작 행보와 끊임없는 실험
호크니는 한때 전통 회화의 거장으로 불렸지만, 평생 동안 매체의 경계를 허물어왔습니다. 사진 콜라주, 판화, 오페라 무대 디자인, 비디오 아트에 이어 노년에는 아이패드를 예술 도구로 삼아 디지털 드로잉을 탐구했죠. 2018년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여왕의 창'이라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는 영예를 안았으며, 2020년 팬데믹 시기에는 노르망디의 봄 풍경을 그린 아이패드 작품으로 전 세계에 희망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보수적인 시대에도 그는 동성애 정체성과 사랑, 일상을 작품에 솔직하게 담아내며 예술적 자유를 지켰습니다. 2012년 뇌졸중과 말년의 청력 상실이라는 시련 속에서도 "나를 젊게 유지하는 건 일"이라며 붓과 스타일러스를 놓지 않았죠. 그는 자신을 '지치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라고 여겼으며, 세상을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을 사로잡은 빛의 화가, 남은 유산
호크니와 한국의 인연은 꽤 깊었습니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은 8개월간 3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국내 미술 전시 역사상 손꼽히는 성공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어 2023년에는 강동구 라이트룸 서울에서 그가 직접 참여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 '비거 앤 클로저'가 열렸고, 지난해에는 파리 루이뷔통재단 미술관에서 70년 화업을 총망라한 마지막 대규모 회고전이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공식적인 방한은 이루어지지 않아 국내 팬들에게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그가 남긴 작품과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영국 가디언지는 그를 '현대 세계의 모습을 포착한 화가'라고 평가했고, 영국 정부와 문화계 역시 그가 제시한 새로운 시각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수영장의 물보라와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그림으로 옮긴 그는, 이제 자신이 사랑했던 빛 속으로 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