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대 붕괴 뒤 찾아온 1,470원대
환율이 조용히 바닥을 다지고 있습니다. 달러-원 환율은 21일 오전 1,470원대 후반에서 거래를 이어가며, 불과 한 달 전 1,559원까지 치솟았던 급등세를 완전히 접어둔 모습입니다. 이번 하락의 중심에는 SK하이닉스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으로 조달한 265억 달러, 약 40조 원 규모의 대규모 환전 물량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례적인 수급 변화가 환율의 주도 세력을 바꿔놓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사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순매도가 이어지면서 커스터디성 달러 매수가 몰렸고, 그 결과 이달 초 1,559.20원까지 17년 만에 최고치를 새로 찍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외국인 매도세가 한풀 꺾이고, 특히 SK하이닉스가 ADR 자금을 국내 반도체 투자를 위해 분할 환전하면서 시장의 수급 균형은 급격히 공급 우위로 기울었습니다.
수급의 무게중심이 달라졌습니다
이번 환율 하락을 이해하려면 수급 구조의 변화를 눈여겨봐야 합니다. SK하이닉스의 달러 매도는 환율 상단을 누르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었고, 여기에 수출업체들의 네고 물량과 롱스탑 청산이 더해지며 하방 압력은 점차 커졌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코스피 조정을 매수 기회로 삼아 1,400억 원 이상 순매수에 나선 점도 커스터디 달러 수요를 줄이는 데 한몫했습니다.
반면 수입업체들의 결제 수요는 여전히 환율 하단을 받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10일째 지속되고,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해상 봉쇄를 선언하면서 국제유가와 달러화는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다행히 파키스탄과 카타르 등 중재국이 10일 휴전을 제안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부 완화되는 분위기입니다. 이 덕분에 뉴욕증시는 하락했지만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0.60% 상승하며 반도체 투자 심리가 버티고 있습니다.
1,450원선 진입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시장에서는 환율이 단계적으로 내려가 1,450원선까지 진입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2분기 GDP 성장률이 시장 전망을 웃돌 경우 원화 펀더멘털이 재평가되어 1,410원에서 1,420원대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iM증권은 이번 주 환율 범위를 1,460원에서 1,510원으로, KB증권은 1,470원에서 1,490원선 등락을 예상하며 추가 하락 시 1,440원대를 제시했습니다.
물론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거나 유가가 급등해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 기조를 강화할 경우 달러 강세는 다시 유입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대규모 달러 공급이라는 수급적 힘이 펀더멘털을 일시적으로 압도하는 양상입니다. 환율이 1,500원대에서 1,400원대 중후반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수출기업들은 환전 시점을 분산하는 등 대응 전략을 재검토할 시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