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위기에서 올림픽 무대로
피겨스케이팅 선수 이해인에게 2026 밀라노 올림픽은 남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생애 첫 올림픽 무대인데요, 그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6월, 이탈리아 전지훈련 중 음주 문제와 불거진 성추행 의혹으로 3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선수 생명이 사실상 끝날 뻔한 위기였죠. 이해인은 성추행 혐의는 전면 부인했지만 음주 사실은 인정한 상태에서, 법원에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고, 이후 대한체육회가 징계를 취소하면서 겨우 올림픽 출전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2023년 4대륙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며 차세대 간판으로 주목받았던 그녀에게 이번 대회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무대가 되었습니다.
쇼트 프로그램, 긴장 속의 시즌 베스트
18일(현지시간) 밀라노 아이스 스케이팅 아레나에서 펼쳐진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 이해인은 ‘세이렌’ 음악에 맞춰 무대에 올랐습니다. 자신은 어제까지만 해도 긴장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얼음판에 서니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털어놨습니다. 그 긴장감 속에서도 그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안정적으로 착지했고, 더블 악셀과 트리플 플립도 무난히 성공시켰습니다. 모든 스핀과 스텝 시퀀스를 최고 난도인 레벨 4로 처리하며 연기를 마쳤는데요. 결과는 기술점수 37.61점, 예술점수 32.46점, 합계 70.07점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이번 시즌 쌓아온 개인 최고 점수(67.06점)를 3.01점이나 경신한 기록입니다. 29명의 선수 중 9위를 기록하며, 프리 스케이팅 진출권을 확실히 따냈죠. 연기 후 그는 심판석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포효 같은 세리머니로 올림픽 무대에 대한 감정을 토해냈습니다.
한편, 같은 한국 대표 신지아는 아쉬운 연기를 펼쳤습니다. 첫 번째 점프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에서 후속 점프 착지에 실패하며 넘어졌습니다. 이후 연기를 수습해 65.66점으로 14위에 올랐고, 프리 스케이팅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국내 선발전 1위의 체면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신지아는 연습 때의 컨디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지만, 프리에서는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치열한 선두권과 남은 과제
이번 쇼트 프로그램을 주도한 것은 일본의 신예 나카이 아미였습니다. 올림픽 데뷔전에서 여자 싱글 최고 난도인 트리플 악셀을 완벽하게 성공시키며 78.71점으로 단독 선두에 섰습니다. 그를 뒤이어 베테랑 사카모토 가오리가 77.23점으로 2위, 미국의 알리사 리우가 76.59점으로 3위를 기록했습니다. 선두권의 점수 차이는 매우 미묘해서, 프리 스케이팅에서의 역전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모든 관심은 이제 20일 열릴 프리 스케이팅으로 쏠립니다. 이해인은 “쇼트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준비한 모든 요소를 빠짐없이 보여드리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신지아 역시 실수를 딛고 일어서 좋은 연기로 화답하겠다고 했죠. 두 선수는 김연아 선수 이후 12년 만의 한국 피겨 여자 싱글 올림픽 메달에 도전합니다. 힘들게 열어젖힌 올림픽 문, 이해인은 그 안에서 자신의 끈기와 실력을 증명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프리 스케이팅에서 그 결실이 얼마나 커질지, 이제 마지막 장이 펼쳐질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