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와 전북, 전남 지역에서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진행된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내놓았습니다. 사업 기간 동안 응급실을 떠돌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례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고, 중증 환자의 하루 평균 사망자 수도 8.3명에서 7.1명으로 줄었습니다. 정부는 9월부터 이 체계를 전국으로 확대했는데, 의료계는 시범사업의 성과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119와 병원 사이에 컨트롤타워를 세우다
이번 시범사업의 핵심은 응급 이송 과정에 '컨트롤타워'를 두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에는 119 구급대가 개별적으로 병원에 수용 여부를 문의했는데, 이제는 시·도 구급상황관리센터와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직접 개입해 병원을 찾아주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덕분에 구급대가 문의한 의료기관 수는 평균 5.8곳에서 3.8곳으로 줄었고, 중증 환자의 현장 체류 시간도 광주 기준 1분 24초 단축되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5월 뇌경색 의심 50대 환자가 도착 직후 CT 촬영과 진단을 받아 골든타임을 확보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지역 내 응급의료기관과 119 구급대 간 실시간 정보 공유가 원활해지면서 중증도에 맞는 신속한 분산 배치가 가능해졌습니다. 정부는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9월부터 전국적으로 동일한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응급실 미수용"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
사실 이 과정에서 용어 하나를 두고도 의료계와 정부 사이에 미묘한 온도 차가 있었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응급실 뺑뺑이'라는 표현이 의료진의 개별적 거부나 소극적 대응에 초점을 맞춰 구조적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며, '응급실 미수용' 등의 표현 사용을 권장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의료혁신위원회 역시 관련 회의에서 '응급실 미수용'으로 용어를 통일하기로 결정한 바 있어, 앞으로 공식 문서에서의 표현 정리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문제는 환자를 받아주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응급실이 문을 닫는 것은 의사 개인의 판단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수술 가능 여부와 중환자실 병상 확보, 관련 진료과 전문의 대응 가능성, 그리고 배후 진료 인프라의 전반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의료계는 이런 맥락을 정확히 드러내는 용어를 써야만 실효성 있는 해법이 나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23건의 성과, 전국 확대를 둘러싼 갑론을박
시범사업의 성과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시범사업에서 다룬 이송 요청이 123건에 불과한데, 호남 지역의 실제 중증 환자 이송 건수는 8,000건에서 1만 건에 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들은 극소수 표본을 이용해 성과를 부풀린 통계적 착시 효과에 불과하며, 응급실 문제의 본질은 배후 진료 인력 확충과 의료 전달 체계 정상화에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전남 지역의 사례도 이런 지적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의료 자원 부족으로 환자를 광주 등으로 연계 이송하면서, 오히려 중증 환자의 현장 체류 시간이 18초 늘어나는 결과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이 같은 한계를 인지하고, 장기적으로는 전문 인력과 병상을 확충하고 단기적으로는 권역을 넘어선 질환별 진료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또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44곳에서 60여 곳으로 늘리고, 필수의료진에 대한 법적 보호와 배상보험료 지원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응급 의료 체계 개선은 단기적인 시스템 정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부와 의료계 간의 대화와 보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