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기름값, 왜 안 내려갈까
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합의하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브렌트유는 79달러 선까지 내려왔는데요. 하지만 운전자들이 주유소에서 마주하는 휘발유 가격은 여전히 리터당 2000원을 웃돌고 있습니다. 전국 평균이 2008원, 서울은 2051원에 달하니 체감 물가는 전혀 내려가지 않은 셈입니다.
당연히 소비자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이 끝났으면 기름값도 내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커지고 있는데요. 사실 기름값이 국제 유가만큼 심플하게 움직이는 건 아닙니다. 국내 석유 유통 구조와 여러 변수들이 얽혀 있어서 가격 반영에 상당한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유가 반영까지 막막한 현실
국제 유가 하락분이 국내 주유소 가격에 전달되기까지 통상 2~3주의 시간이 걸립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답답한데, 이번에는 다른 변수들이 겹쳤습니다. 원유를 달러로 결제하는 특성상 높은 환율이 원유 도입 단가 하락분을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상황도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종전은 됐지만 기뢰 제거 작업 등 전쟁 흔적 때문에 유조선 통항 지연이 예상됩니다. 전문가들은 기뢰 파악에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동 산유국들이 전쟁 중 구축한 우회 수송로에 안착하면서 호르무즈 의존도를 낮추는 구조적 전환이 진행 중입니다. 골드만삭스는 통항량이 전쟁 전의 70% 수준에 머물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차 최고가격 고시를 유보하고 6차 가격을 연장했는데요. 이로 인해 도매가는 휘발유 리터당 1934원, 경유 1923원으로 71일째 동결되면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인하 효과가 더딘 상황입니다. 정부는 누적된 인상 억제분이 한꺼번에 반영될 경우 국내 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신중한 출구 전략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남은 청구서들
이번 전쟁의 경제적 후유증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차원에서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디스 등은 미국이 떠안은 총비용을 최소 13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03조원으로 추산했습니다. 여기에는 직접 군사비 290억 달러와 소비자들이 추가 부담한 연료비 600억 달러가 포함됩니다. 미국인 가구당 평균 460달러의 추가 지출이 발생했고, 물류비와 식료품 가격까지 연쇄 상승했습니다.
유가 전망도 복잡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정상화되더라도 물류 병목과 중동 산유국의 냉방 시즌 수요, 그리고 에너지 기업들의 투자 위축으로 인한 신규 공급 부족이 맞물려 있어 연초의 50달러대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올해 4분기부터 유가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주유소 기름값이 눈에 띄게 내려가려면, 국제 유가 안정뿐 아니라 환율 안정과 호르무즈 해협 물류 회복, 그리고 정부의 최고가격제 출구 전략까지 여러 조건이 함께 충족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은 체감 인하까지 적어도 몇 주에서 몇 달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