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새로운 불확실성이 한미 관계 전반에 덮치고 있습니다. 당장 예정됐던 핵추진잠수함 건조 협상을 위한 미국 협상단의 방한이 보류됐고, ‘2+2 외교·국방장관 회담’도 무산됐습니다. 안보 협력의 진행까지 관세 판결의 후폭풍에 휘말리면서, 경제와 안보가 얽힌 복잡한 난제가 되살아났습니다.
판결 이후 더 거세진 관세 압박
대법원 판결은 트럼프 진영에게 예상치 못한 타격이었지만, 오히려 더 공격적인 관세 카드를 꺼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트럼프 측은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최대 15%의 글로벌 기본 관세 재도입을 예고했는데요. 이 법조는 ‘크고 심각한’ 무역적자 시 150일간 한시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하지만, 5개월 후 연장에는 의회 승인이 필요합니다. 이미 민주당 상원 대표는 만료 후 연장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하며, 관세 문제가 앞으로도 정치적 각축장이 될 것임을 보여줬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진짜 무기는 ‘핀셋 관세’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국가 전체를 압박하는 대신, 반도체 같은 핵심 품목에 고율 관세를 집중하는 방식인데요. 갤럭시 스마트폰 완제품 자체보다 그 안에 들어가는 반도체에 25% 관세가 부과될 경우, 이는 제조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스텔스 가격 인상’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더욱이 미국 내 생산 시설을 가진 기업에 관세 혜택을 주는 ‘차등 정책’이 검토되면서, 삼성전자 같은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압박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이 맞닥뜨린 복잡한 계산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까다로운 선택 앞에 서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판결을 계기로 대미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모든 국가에 동일 관세가 적용되면, 브라질·중신 등에 비해 한국의 상대적 불이익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반면, 장하준 런던대 교수는 서둘러 대미 합의에 구조적 양보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의 관세 공세는 미국 내 투자 유치와 정치적 효과를 위한 ‘도깨비 방망이’에 가깝습니다. 한국·일본·독일이 제조업의 3분의 1을 미국으로 옮겨도 중국의 압도적 생산 비중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이죠. 따라서 미국 중간선거까지 시간을 벌며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겁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출 경쟁력 확보와 시장 다변화를 위한 민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무역법 301조를 발동해 추가 관세를 검토할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정부의 대응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고정밀 지도 반출이나 농산물 검역 문제가 다시 부각될 경우, 이는 단순한 관세 문제를 넘어 통상 마찰의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각축과 불투명한 전망
앞으로의 흐름은 미국 내 정치 구도에 크게 좌우될 전망입니다. 트럼프의 새 관세가 5개월 후 의회 승인을 받으려면 공화당의 확고한 지지가 필요한데, 공화당 내에서도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습니다. 민주당은 이를 ‘미국인에게 더 부담되는 세금’이라며 강력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난맥상은 한국에게는 양날의 검입니다. 협상이 길어질수록 불확실성은 지속되지만, 동시에 서두르지 않고 관망할 시간을 벌 수 있기도 하죠.
전문가들은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으로 명확한 선을 강조합니다. 미국이 대미 투자 관련 법제화를 요구할 경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도 먼저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거죠. 동시에 반도체, 재생에너지, AI 등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독일식 중견 제조업을 육성해 내실을 다지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안보 협의 지연은 당분간 불가피해 보이지만, 외교 채널을 통한 소통은 지속해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해소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