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옮겨간 전장
드론과 포병의 감시가 촘촘해지면서 우크라이나 전선의 지상 이동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은 옛 소련 시절 건설된 가스관을 새로운 이동로이자 전투 공간으로 쓰고 있는데요. 지름 1.2미터 안팎의 관로가 드론을 피할 수 있는 통로가 된 겁니다.
이 관로는 송유관과 가스관을 합쳐 수천 킬로미터에 이릅니다. 러시아군은 올해 초 가스관을 따라 수 킬로미터를 이동해 쿠피안스크 인근 전선 뒤편으로 침투했습니다. 관로에 구멍을 내 지상으로 나와 공격한 뒤 다시 지하로 사라지는 방식이었습니다.
두더지 잡기에서 근접전으로
우크라이나군은 처음에 출입구를 포격하고 드론으로 파괴하는 방식으로 맞섰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파괴된 곳마다 새 통로를 만들면서 봉쇄는 쉽지 않았는데요. 한 여단 관계자는 이를 두더지 잡기 게임에 비유했습니다.
결국 우크라이나군은 관로 안으로 직접 들어가 러시아군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중기관총과 무인차량을 동원했고, 양측이 4미터 이내에서 맞붙는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가스와 시신에서 나는 악취 탓에 방독면을 쓰고 군복을 식초로 세탁해야 했다는 전언도 있습니다. 하르티야여단은 러시아군 30여 명을 생포하고 100여 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우크라이나 병사는 드론 위협이 끊이지 않는 지상보다 지하에서 싸우는 쪽을 선호한다고 전해졌습니다. CSIS의 마크 캔시언 고문은 정밀무기에 대응해 지하전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도네츠크의 민간인 대피
격전이 이어지자 우크라이나 당국은 도네츠크 지역의 어린이 동반 가족을 대상으로 대피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바딤 필라시킨 도네츠크 주 청장은 크리마토르스크와 슬로비안스크의 모든 주거 지역을 의무 대피 구역에 포함한다고 밝혔는데요. 러시아군의 공격이 매일 이어지는 만큼 집 근처까지 공격이 닿기를 기다리지 말고 즉시 떠나달라고 당부했습니다.
10월 15일 기준 우크라이나가 통제하는 도네츠크 주에는 약 7만1300명의 민간인이 남아 있습니다. 이 가운데 6만 명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21개 마을에 거주하고 있어 대피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경찰과 국가 비상 서비스 특수팀은 임시 대피소를 운영하며 가족 이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