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시작된 참정권 시위가 14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시작된 이 집회는 현재 개표소가 마련된 경기장 출입을 사실상 봉쇄한 채 장기화되고 있는데요. 체육 단체들은 두 주 가까이 업무 공간과 훈련 장비를 사용하지 못해 곤혹을 치르고 있으며, 국가대표 선수들이 남의 장비를 빌려 국제대회에 출전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주최자 없는 14일, 대화의 창구가 보이지 않아
이번 시위는 특정 단체나 지도부가 조직한 기존 집회와는 구조가 확연히 다릅니다. SNS를 통해 개별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무주최 집회 형태인데요. 협상할 상대가 없다 보니 경찰과 체육 단체 모두 대화의 창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위대 내부에서도 체육협회 직원들의 제한적 진입을 허용하자는 온건파와 재선거 결정 전까지는 봉쇄를 절대 풀 수 없다는 강경파가 맞서고 있어 합의점 도출은 더욱 요원한 상황입니다.
당연히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 체육 단체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약 60억 원의 금전적 손실이 발생했고, 펜싱 국가대표팀은 개인 장비를 반출하지 못해 남의 칼을 빌려 대회에 나가야 했습니다. 대한수중핀수영협회 역시 세계선수권대회 물품을 꺼내지 못해 행정 공백이 심각합니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은 최소한의 업무 복구를 위해 공권력의 적극적인 지원을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극단으로 치닫는 현장, 정치권 중재도 무산
시위가 길어질수록 현장은 더욱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17일에는 30대 남성이 흉기로 자해를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일부 강성 참가자가 체육협회 직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등 폭력적 행동도 분출되었습니다. 초기에는 투표함 검증을 요구했지만, 현재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한미 공조수사 등 극단적인 주장이 지지를 얻으며 시위 성격이 변질되고 있습니다. 사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출입을 막아선 여성 참가자를 영웅처럼 떠받드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직접 나서봤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 등 원내지도부가 현장을 방문해 체육회 활동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으나, 일부 참가자들의 욕설과 야유에 밀려 10여 분 만에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현장을 찾았으나 시위대의 반발로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민주당은 장동혁 대표가 부정선거 음모론에 심취해 극우 세력을 자극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국민의힘은 서울경찰청 항의 방문 과정에서 보좌진이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며 법적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투표함 이송과 국정조사, 교착을 푸는 열쇠는
현재 가장 민감한 쟁점 중 하나는 경기장에 보관 중인 투표함과 개표 물품의 처리 방향입니다. 중앙선관위는 송파구 선관위로의 안전한 이송을 위해 행정안전부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은 공직선거법상 법적 보관 주체는 선관위임을 근거로 투명한 이관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법원이 투표함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을 기각한 만큼, 선관위 지정 장소로 옮겨 보관하는 것이 법리상 순리라는 입장입니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올림픽경기장이 선수들을 위한 공간임을 강조하며 조속한 반환을 촉구했습니다.
경찰은 업무방해 혐의로 일부 강경 참가자들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습니다. 특히 성조기를 두르고 경기장 문을 막아선 여성, 이른바 '올다르크'로 불리는 참가자를 비롯해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다수를 상대로 신원 확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주최자가 없는 집회 특성상 대표성 있는 제재가 어렵다는 점은 경찰의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반대로 한국대학총학생회공동포럼은 이 사태가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 기본 원칙의 문제라며 선관위의 투명한 책임을 요구했습니다. 한편 국회는 18일 본회의에서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계획서를 처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했습니다. 이번 사태의 전말을 밝히고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인데요. 다만 현장의 봉쇄가 풀리지 않는 한 선수들의 피해와 지역사회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