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압박 속에서도 집단방위는 살아있나
2026년 7월 7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제36차 나토 정상회의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번 회의는 우크라이나 전쟁 5년 차를 맞아 동맹의 결속력을 점검하는 시험대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하지만 회의장 밖에서는 미국과 유럽 사이의 갈등이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다수 동맹국이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는 지난해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특히 과거 이란 군사작전 당시 유럽의 협조가 부족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유럽 국가들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미국산 무기 구매를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면 유럽 측은 이미 상당한 증액을 했다는 입장이라 양측의 신경전은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토는 집단 방위 의무를 재확인하는 공동 선언문 채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성인의 43%만이 유사시 나토가 미국을 지원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되며 민망한 현실도 드러났습니다. 나토 32개 회원국 평균이 57%인 것과 비교하면 미국 내 동맹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나토 가입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비율은 72%로 여전히 높아 완전한 동맹 붕괴는 아니라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들도 있습니다.
유럽의 군사 자립은 얼마나 가능할까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화답하듯, 나토는 이번 회의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방산 계약을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스웨덴 사브의 공중 레이더 탐지 시스템을 11개국이 도입하고, 노스럽그러먼의 트라이튼 무인정찰기를 4개국이 최대 5대 구매하기로 했는데요. 여기에 더해 향후 5년간 대드론 역량 강화에만 4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1조 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계약들은 단순히 방위비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전력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특히 유럽 기업이 제작한 사브 레이더를 도입한 것은 미국에 대한 무기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의 군사 자립을 꾀하려는 상징적 행보로 읽힙니다. 물론 트라이튼 같은 첨단 장비는 여전히 미국 제조사에 의존해야 하니 완전한 독립은 아직 요원한 목표입니다.
한편 회원국 간 방위비 분담 격차도 뚜렷합니다. 발트 3국과 폴란드는 새 목표치인 3.5%를 조기에 달성할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은 2%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는 동맹 내에서도 안보 위협을 피부로 느끼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의 온도 차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튀르키예와 인도태평양, 변화하는 동맹의 지도
이번 회의를 주최한 튀르키예의 변화도 주목할 만합니다. 과거 나토 안의 문제아로 불리던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역할 축소 속에서 전략적 요충지이자 중재자로 부상했습니다. 앙카라에서 열린 방산포럼에는 3,000개 이상의 현지 기업이 참여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는데요. 튀르키예는 단순한 무기 공급자를 넘어 유럽의 핵심 안보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다만 러시아산 S-400 문제로 인해 중단되었던 F-35 도입이 재허용될지는 이스라엘의 반발 등 여전히 복잡한 외교적 셈법이 얽혀 있습니다.
인도태평양 4개 파트너국인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도 초청받았으며,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한국은 유럽과의 무기 거래를 바탕으로 첨단 기술 공급망의 핵심 행위자로서의 입지를 넓히고 있습니다. 나토라는 이름 아래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은, 안보 위협이 더 이상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번 나토 회의는 더 큰 흐름의 일부입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핵전력 현대화, 중국의 해군력 강화, 일본과 호주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의 재무장이 동시에 진행되며 냉전 이후 가장 심각한 군비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앙카라에서 논의되는 방위비 숫자와 무기 계약들은 결국 이 새로운 안보 질서 속에서 각국이 생존 전략을 다듬는 과정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