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고유가의 공포
휘발유 리터당 가격이 2천원에 다시 육박하고 있습니다. 국제 정세 불안과 고환율이 겹치며 주유소 게시판의 숫자는 꾸준히 오르고 있고, 식탁 위에서는 기름값 이야기가 오가죠.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유류세 인하를 비롯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 효과와 부작용을 두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유가 위기는 단순한 일시적 변동이 아닌,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드러내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를 보면 휘발유 가격이 2천원을 넘었던 때는 2012년과 2022년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정부가 유류세 인하 대신 알뜰주유소 확대 같은 시장 구조 개선에 주력했고,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는 유류세를 최대 37%까지 인하하며 가격을 잡으려 했죠. 두 경우 모두 국제 유가의 움직임에 최종적인 가격이 좌우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재 7%의 유류세 인하는 리터당 약 57원의 할인 효과를 내고 있지만, 국제 유가가 크게 오르면 이 장벽은 쉽게 무너집니다. 더욱이 유류세 인하의 혜택이 고소득층에게 더 많이 돌아간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어, 정책의 형평성에 대한 의문까지 던져지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대책, 그 속의 갈등
이런 위기 속에서 국회에서는 유류세 탄력세율 조정 폭을 기존 30%에서 50%까지 확대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2028년 말까지 적용 기한을 연장해 국제 정세 불확실성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물가 안정에 확실히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이죠. 그러나 이는 동시에 유류세를 계속해서 경기 대응용 ‘방패’로 사용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세금 감소는 중앙과 지방 정부의 재정에 부담이 되고, 무엇보다 ‘교통·에너지·환경세’라는 이름에 담긴 탄소 감축 정책의 신호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편, 정부는 보다 강력한 가격 통제 수단으로 ‘유가 최고가격제’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농가나 택배기사 등 연료비 부담이 큰 현장에서는 기대감이 높습니다. 반면, 시장의 반응은 조심스럽습니다. 가격 상한선이 설정되면 정유사가 공급을 줄이거나, 오히려 모든 주유소가 그 상한가에 ‘맞춰’ 판매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정유사와 주유소는 이미 서로를 가격 상승의 ‘빌런’으로 지목하며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는 상황인데, 근본적인 시스템 논의보다는 ‘누구 탓인가’ 싸움에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빌런 찾기’를 넘어서야 할 때
일본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일본은 2021년부터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정유사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고 잠정세율을 조정하는 등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을 했습니다. 그 결과 유가 변동폭을 크게 줄일 수 있었죠. 반복되는 유가 리스크에 대응하려면,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일회성 대책이나 책임론을 넘어선 시스템적 대비가 필요합니다. 유류세 인하나 가격 통제 같은 단기 처방만으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국제 유가 변동에 취약한 에너지 수급 구조를 점검하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취약 계층을 위한 맞춤형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등 다각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유가 위기는 경제의 체온을 재는 잣대이자, 우리가 더 건강하고 탄력적인 시스템을 준비해야 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