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의 벽이 무너지는 채용 현장
SK하이닉스가 신입사원 수시채용에서 4년제 학사 학위 이상이라는 학력 자격 요건을 완전히 삭제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지원 문턱을 낮춘 것이 아니라 AI 반도체 시대를 맞아 실무 역량과 성장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평가하겠다는 선언으로 업계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한 생각 근육, 적응 근육, 공감 근육 이른바 3대 근육을 갖춘 인재를 찾겠다는 방향성이 담겼는데요. 이러한 변화는 고등학교나 전문대 출신자도 역량만 갖추면 소위 신의 직장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습니다. 물론 이는 대졸자가 학력을 속여 생산직에 응시하는 등의 부작용을 막는 효과도 기대됩니다.
30년 전 삼성과 달라진 건 AI 전쟁
사실 학력 무관 채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삼성은 1995년부터 공채에서 학력과 나이, 성별, 출신 지역 등을 제한하는 조건을 없애고 역량 중심의 열린 채용을 3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SK하이닉스의 결정이 업계에 더 큰 파장을 일으키는 이유는 시점과 규모에 있습니다. 글로벌 AI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설계 인력을 포함한 반도체 전문가들이 전략 자산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설계 직군에서만 세 자릿수 규모의 대규모 채용을 진행했으며, 이는 팹리스 업계와 삼성전자 특정 사업부의 인력 이탈 우려까지 낳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HBM 핵심 인력에게 연봉 25만 달러 이상을 제시하는 등 연봉 4억 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보상을 내걸며 인재 쟁탈전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법제화 움직임과 유리천장 논란
학력 장벽이 허물어지는 추세 속에서도 사회적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22년부터 확산된 블라인드 채용의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는데요. 일각에서는 지원자의 실질적인 직무 역량을 검증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학력 확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학벌주의를 완전히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팽팽합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여권에서는 학벌 차별 금지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채용 공고에서 학교 이름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주요 기업 경영진이 여전히 특정 명문대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직 내 유리천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겁니다. 채용부터 승진, 사내 문화까지 아우르는 전방위적 변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학력 철폐는 형식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조벽 고려대 석좌교수는 대학의 학위 독점이 깨지고 기업이 직접 인재를 양성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교육 개혁의 필요성까지 제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