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만 내리지 못하는 원자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 2호기 계속운전 여부를 또다시 보류했습니다.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2호기는 2023년 4월 설계수명 40년을 채우며 가동을 멈춘 지 벌써 2년 7개월째입니다. 이미 30개월의 시간을 허비하면서 국가적으로 하루 13억원, 총 1조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그동안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10년 추가운전을 신청했지만, 원안위는 방사선환경영향평가 관련 추가 자료를 요구하며 결정을 미루고 있습니다.
절차적 문제와 안전성 논란
고리 2호기 계속운전 심의가 지연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수명 만료 2~5년 전인 2021년 4월 이전까지 신청해야 했지만, 한수원은 1년이 넘은 2022년에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수원은 과태료를 부과받기도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40년 전 원전 건설 당시와 달라진 환경변화가 방사선 환경영향평가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고관리계획서는 승인되었지만, 시민단체들은 이를 '졸속 심의'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정의행동은 "원안위가 안전보다 경제성을 우선시하며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의 우려를 묵살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수소 농도 분석에 최신 기술인 '다중구역 해석 모델' 대신 구형인 '단일구역 해석 모델'을 적용한 점을 문제 삼고 있죠.
대립되는 두 가지 가치
한쪽에서는 에너지 안보를 강조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에너지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리 2호기는 국내 원자력 발전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처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원전 업계는 안전성이 확보된 원전의 가동 중단이 기회비용과 유지 관리비 등 막대한 낭비를 초래한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시민단체와 환경운동연합은 노후 원전의 안전 문제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40년 이상 가동된 원전은 부품 노후화, 균열 발생 가능성 등 안전 위험 요소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 발생 시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향후 전망과 쟁점
원안위는 11월 13일 회의에서 고리 2호기 계속운전 안건을 재상정하여 논의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고리 2호기 하나의 운명만이 걸린 게 아닙니다. 고리 3·4호기, 한빛 1·2호기, 월성 2~4호기 등 총 10기의 원전이 계속 운전 신청을 해둔 상태인데요. 이들의 심사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국제적인 추세를 주목합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안전성이 입증된 원전에 대해 80년 운전을 승인하는 등 세계 각국이 원전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능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AI 시대의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원전의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도 에너지 안보라는 현실적인 필요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입니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정보 공개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