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하는 한미 디지털 통상 현장
미국 하원이 한국의 디지털 규제 법안을 겨냥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번 청문회는 ‘미국 혁신 및 기술 리더십 유지’를 주제로 열리는데요, 특히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정통망법)과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 정치권에서는 한국 정부의 규제 움직임을 ‘미국 기업에 대한 적대 행위’로 규정하며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죠. 공화당 대럴 아이사 하원의원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재명 정부의 미 기술 기업 표적화와 쿠팡에 대한 불공정 대우는 용납할 수 없다”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통상 정책 기조와 맞물려 있습니다. 미 국무부는 이미 지난해 한국의 정통망법 개정안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미국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결국 단순한 규제 논쟁을 넘어 한미 무역협정 상의 의무와도 연계되어 논의되면서, 통상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소통 행보와 맞선 미국의 강경 발언
이런 긴장 속에서 한국 정부는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워싱턴DC에 급파했습니다. 여 본부장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주요 상·하원 의원들을 면담하며 한국의 입법 취지를 설명하고 오해를 해소하는 데 나섰습니다. 그의 주요 논지는 명확했습니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같은 특정 사건과 디지털 경제 전반의 규제 입법은 별개의 문제이며, 어떤 특정 기업을 차별하거나 타깃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복해 강조했죠.
그러나 미국 측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아이사 의원을 비롯한 공화당 강경파들은 오히려 비판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 하원의원은 쿠팡 미국인 임원 기소를 요구한 한국 정부의 조치에 “경악”을 표시하며,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대우에 책임을 묻기 위한 조치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11월 예정된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국 산업 보호 기조가 한층 강화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여 본부장의 적극적인 소통 행보가 당장의 온도를 낮추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입니다.
법적 쟁점과 향후 갈등의 불씨
이번 논쟁의 배경에는 한국이 추진 중인 두 가지 주요 법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통망법 개정안(일명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은 가짜뉴스 확산 차단을, 온라인플랫폼법은 플랫폼 공정경쟁 환경 조성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법안들이 소비자 보호와 시장 경쟁 촉진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미국 측은 이들이 사실상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해 미국 기업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불을 지폈습니다. 미국 의회는 이 사건에 대한 한국의 수사와 규제 움직임을 청문회에서 집중 추궁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사안이 단순한 기업 규제를 넘어, ‘국가가 지원하는 적대 행위’라는 정치·외교적 프레임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향후 전망은 더욱 복잡합니다.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 관세 관련 판결이 임박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수단을 통한 추가적인 통상 압박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한 철저한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미 간 디지털 통상 논의는 단순한 규제 차원의 마찰을 넘어, 글로벌 기술 주도권과 데이터 주권을 둘러싼 더 거대한 경쟁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