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락된 20개사와 19년의 공백
공정거래위원회가 HDC그룹의 정몽규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고발 이유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제출한 기업집단 지정 자료에서 동생과 외삼촌 일가가 지배하는 친족 회사 20곳을 누락한 것입니다. 문제는 누락 기간이 일부 회사의 경우 2006년부터 계산해 최장 19년에 이른다는 점입니다. 누락된 회사들의 총자산 규모는 매년 1조 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이들은 그 긴 기간 동안 사익편취 규제나 공시 의무 같은 기업집단에 적용되는 각종 규제를 받지 않은 셈입니다. 공정위는 정 회장이 누락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위치였고, 자진 신고 기회도 주어졌음에도 시정하지 않았다며 고의성을 크게 봤습니다.
HDC그룹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17일 잇따라 입장문을 내고, 해당 친족회사들은 1999년 현대그룹에서 HDC가 분리 독립한 이후 단 한 건의 거래도 없었으며, 정 회장이 지분도 보유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2025년 공정위로부터 해당 회사들이 독립 경영을 한다는 점을 인정받았다는 게 HDC의 핵심 논리입니다. 즉, 실질적인 지배 관계가 없어 계열사로 볼 수 없는데, 단순히 서류상 신고 과정에서 누락된 것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유일한 거래로 지적된 SJG세종 계열사와의 건물 관리용역 계약 한 건은 HDC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엇갈리는 '고의성' 판단
공정위와 HDC의 첨예한 대립은 '고의성' 해석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HDC의 지정업무 담당자와 정 회장 비서진은 2021년 사촌의 고발을 계기로 누락된 친족 회사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해당 회사들로부터 친족 지분율이 30% 이상이라는 답변까지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2024년까지 누락 상태를 유지하며 자료를 제출했다는 것이죠. 공정위는 정 회장이 친족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했음을 감안할 때, 누락을 쉽게 인지하고도 방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반면 HDC는 이 모든 과정이 '단순 실수'의 연속이라고 맞섭니다. 고의적으로 은폐할 동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회사 측은 친족회사들과 경제적 유대가 거의 없고, 오히려 공정위로부터 독립성을 인정받은 상태라 규제를 회피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공정위는 '상장사 SJG세종'이 누락된 점을 특별히 지적합니다. 해당 회사의 공시자료를 보면 친족 연관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음에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입니다. 이처럼 같은 사실을 두고 '고의적 은폐'와 '행정적 착오'라는 정반대의 해석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남은 법적 쟁점과 제도의 교훈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대기업 집단에 대한 공시와 감독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정몽규 회장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는데, 해당 법률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향후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HDC 측의 '독립 경영 인정' 주장이 고의성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공정위는 이번 고발이 기업집단 지정제도의 투명성과 공정한 경쟁 환경을 지키기 위한 필수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누락은 제도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규제의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입니다. HDC그룹은 재발 방지를 위해 내부 절차를 개선했다고 밝혔지만, 공정위는 앞으로도 정확한 자료 제출을 위한 감시를 강화하고 위반 시 엄중히 제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사건은 결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서 투명한 정보 공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친족 간의 경제 활동이 복잡하게 얽힌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특성상, 어디까지를 '실질적 지배'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더욱 활발해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