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없는 성장의 뚜렷한 실체
최근 3년간 국내 대기업들의 실적은 화려했습니다.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282개사를 분석한 결과, 매출은 10.9% 늘었고 영업이익은 무려 81.0% 급증했는데요. 하지만 정작 고용 인원은 129만 9천여 명에서 130만 2천여 명으로 0.2% 증가에 그쳤습니다. 실적의 팽창과 고용의 정체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고용 없는 성장' 구조가 뚜렷해졌습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특정 업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업종은 매출이 34.4%, 영업이익이 2740.5%라는 기록적인 성장을 거뒀지만, 고용 증가율은 0.6%에 머물렀습니다. 일부 기업의 인력 감소가 상쇄 효과를 낸 탓인데요. 반면 500인 이상 대기업 기준으로는 반도체 업종이 38.8%, 배터리 산업이 150.1%의 폭발적인 고용 증가를 기록하기도 해서 업종별로 상황이 크게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업종별로 갈라진 고용 시장
업종별 흐름을 자세히 보면 K자형 양극화가 뚜렷합니다. 조선·기계 업종은 글로벌 발주 확대와 방산 수출 증가로 인력을 12.6% 확대했고, 제약·바이오 업종도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확대를 통해 11.5%의 고용 증가를 이뤄냈습니다. 이들 업종은 실적 성장과 더불어 고용 확대가 동반되는 긍정적인 흐름을 보여주었습니다.
반대로 내수 중심 업종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통신 업종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4.2%, 0.8% 늘었음에도 고용 인원이 6358명 줄어 17.6%의 감소율을 기록했습니다. 식음료 업종 역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소폭 증가했는데도 고용은 4.8% 감소했죠. 철강, 화학, 조선 등 전통 산업에서는 고용이 사실상 멈춰 섰고, 석유화학(-7.5%)과 건설(-3.4%), 유통(-1.1%)에서도 인력 감소세가 이어졌습니다.
실적과 고용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로운 점은 고용 증감이 영업이익보다 매출액 성장률과 더 밀접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자동차, 철강, 이차전지, 운송 업종은 영업이익이 다소 감소했음에도 매출이 늘면서 고용이 확대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기업의 외형적 성장 규모가 커질 때 인력 수요가 생기는 구조인데요, 이익만 늘고 판매 규모가 크게 늘지 않으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겁니다.
물론 IT·전기·전자 업종의 경우는 조금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AI 메모리와 고부가 반도체 중심의 성장은 생산성 향상과 자동화 확대로 연결되면서 대규모 채용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4077명, 2484명을 늘렸지만,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 등의 구조조정이 이를 상쇄했고, 전체적으로는 첨단 산업의 성장이 꼭 일자리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고용 시장의 양극화와 실적 대비 정체된 채용 흐름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