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승인한 첫 번째 시험대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개편이 공식적으로 시동을 걸었습니다. 정부는 지난달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의 대산 사업장 통합 계획, 이른바 '대산 1호 프로젝트'를 최종 승인했습니다. 이것은 중국발 저가 제품 공급 과잉이라는 업계 전체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본격적인 사업 재편 사례입니다. 양사는 각각 6000억 원씩 출자해 합작법인 'HD현대케미칼'을 설립하고, 정부는 최대 2조 1000억 원 규모의 금융 및 세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핵심은 에틸렌 등 기초 소재의 생산량을 대폭 줄이는 대신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집중하는 전환입니다.
설비 줄이고, 고부가치로 전환한다
구체적인 변화는 상당히 과감합니다. 롯데케미칼은 대산에 있는 연간 110만 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을 최소 3년간 중단합니다. 이는 두 회사의 통합을 통해 중복된 설비를 정리하고, 업계 전체의 에틸렌 생산량을 연간 55% 가까이 감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값싼 기초 소재 시장에서의 경쟁을 포기하고, 대신 고탄성 플라스틱 같은 수익성이 높은 첨단 소재 시장으로 사업을 전환하겠다는 전략이죠. 정부는 이 전환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막대한 자금을 지원합니다. HD현대케미칼에 1조 원의 신규 자금을 공급하고, 기존 대출 1조 원을 영구채로 전환해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습니다. 또한 2028년까지 약 7조 9000억 원에 달하는 채무 상환을 유예하는 등 연착륙을 위한 버팀목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승인 뒤에 남은 지역의 그림자
그러나 이런 대규모 구조개편의 그림자는 이미 지역 사회에 드리우고 있습니다. 대산 석유화학 산단 주변에서는 일감이 줄어들면서 상권이 위축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식당과 택시 업계에서는 매출 감소를 호소하고 있고, 부동산 거래도 침체된 상태입니다. 가장 큰 우려는 원청 기업보다 하청업체와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더 큰 타격이 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조조정 결정 전부터 협력업체들을 중심으로 인원 감축이 이뤄졌고, 구직급여 신청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네요. 정부의 목표는 2029년 흑자 전환이지만, 이는 앞으로 3~4년간은 일감이 부족한 '보릿고개'를 겪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부는 대산단지를 '분산 에너지 특구'로 지정해 전기요금을 낮추는 등 추가 지원을 예고했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급등한 산업용 전기료를 고려할 때 인하폭이 충분치 않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첫 번째 구조개편의 성패는 단순한 기업 합병을 넘어, 위기에 처한 전통 산업의 재도약 모델이 될 수 있는 만큼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