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다수가 원하는 민주적 절차
경남 도민 열 명 중 약 여덟 명은 경남과 부산의 행정통합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가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7%가 통합 논의의 최종 결정권을 주민 투표에 둬야 한다고 답했는데요. 더불어 통합 시기에 대해서도 ‘서두르지 말자’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2026년 지방선거와 함께 통합하는 것보다는 2028년이나 2030년 이후로 시기를 늦추자는 의견이 53.1%로 더 높게 나온 겁니다. 이는 행정 효율만이 아니라 충분한 논의와 민주적 절차를 중시하는 도민들의 신중한 태도를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이 같은 여론은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도지사의 공동 로드맵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두 지사는 지난달 공동 입장을 내며, 통합의 전제 조건으로 중앙정부의 실질적인 권한과 재정 이양을 요구했어요. 그리고 그 조건이 충족되면 올해 안에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2028년 총선에서 통합 광역단체장을 선출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했습니다. 박형준 시장과 박완수 지사는 심지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더라도 임기를 절반 이상 단축하겠다”며 적극적인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의 다른 속도와 맞서는 지자체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은 정치권, 특히 여당 측에서는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과 부산시당은 2028년 통합단체장 선출은 사실상 통합을 미루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해요. 그들은 오히려 올해 실시되는 지방선거가 통합을 논의하고 추진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고 주장하며, 주민투표 실시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 수장들의 ‘신중론’과 국회의 ‘속전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행정통합 논의는 복잡한 정치적 각축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통합 논의가 단순한 행정구역 개편을 넘어, 중앙과 지방의 권한 배분, 즉 지방분권의 핵심 쟁점으로 비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형준 시장과 박완수 지사가 강조한 ‘자치권·재정권 이양’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데요. 그들이 바라는 통합은 단순히 두 지자체를 합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권한과 재정을 가진 강력한 지방정부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따라서 절차와 속도에 대한 논란은 단순한 시기 문제가 아니라, ‘어떤 통합을 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전국적 확산 속에서 드러나는 공통 과제
경남·부산의 논의는 결코 고립된 사례가 아닙니다. 대전과 충남 역시 활발하게 타운홀 미팅을 개최하며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고, 전주와 완주의 통합 논의에서는 완주군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조직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국 각지에서 행정통합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핵심 질문은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입니다. 지자체장과 중앙정부, 정치권이 다양한 입장을 펼치는 가운데, 실제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제도화할지가 가장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재의 논의 흐름은 행정통합이 위에서부터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주민의 동의와 참여를 바탕으로 한 합의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경남도 여론조사나 여러 지자체의 타운홀 미팅 시도는 모두 그런 방향을 향한 노력의 일환이죠. 그러나 여전히 ‘여론몰이’나 ‘정치 쇼’라는 비판도 공존하는 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설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행정통합 논의가 단순한 지역 이슈를 넘어, 한국 지방자치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