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을 뒤흔든 응원 구호
2026년 6월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회전입니다. 서울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외치며 떼창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5·18민주화운동을 교묘하게 조롱하는 이른바 '도그 휘슬'식 표현으로, 상대 팀이 광주 출신 학교라는 점에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학생들은 단순히 웃긴 말이나 유행어로 생각했다고 해명했는데요. 하지만 이 구호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특정 지역과 역사적 사건을 비하하는 밈으로 소비돼 온 것이 사실입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사에서도 교사의 89.3%가 최근 1년간 학교 내 혐오 표현을 접했다고 답했을 정도로, 이런 문화는 이미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결국 경기장이라는 공공 공간에서 혐오가 놀이처럼 외쳐진 셈이고, 이는 단순한 몇몇 학생의 일탈로 넘길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번졌습니다.
사과와 징계 사이에서
논란이 거센 가운데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과 학부모, 교직원 등 140여 명이 7월 6일 광주를 찾았습니다. 광주제일고를 방문해 사과문을 전달하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며 고개를 숙였는데요. 이규연 광주제일고 교장은 학생들의 미래를 응원하며 선처를 호소했고, 5·18 관련 단체들도 포용의 정신을 강조하며 감경을 요청했습니다.
반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배재고는 이에 불복해 7월 8일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나아가 10일에는 법원에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제출한 상태입니다. 대한체육회는 20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재심의를 진행하기로 했고, 협회 측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봉황대기 대진표 추첨에 배재고를 일단 포함시키기로 했습니다. 징계가 1개월 이하로 감경될 경우에만 8월 개막하는 봉황대기 출전이 가능한데, 이 여부는 재심 결과에 달려 있습니다.
넘어야 할 과제는 남았다
이번 사태를 두고 코치진의 묵인 여부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코치들이 3루 코치석에서 직접 듣지 못했다는 취지로 보고했지만, 현장 확인 결과 더그아웃과의 거리는 10여m에 불과했습니다. 수십 명의 떼창을 몰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고, 배재고 수석코치도 제때 제지하지 못한 점을 인정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성인들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입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배재고에 응원 화환을 보내는 등 청소년을 진영 논리의 도구로 삼는 행태가 비판받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이번 일이 단순한 징계로 끝날 게 아니라, 학교 스포츠 현장의 '야지' 문화와 청소년 혐오 표현 확산을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실질적인 민주시민 교육과 교사들의 교육권 보장, 그리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 없이는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사과와 용서가 이어지고 있지만, 피해 학생들의 충분한 치유와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는 교육이 뒤따르지 않으면 의미가 반감될 수 있습니다. 20일에 열리는 재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가 혐오를 어떻게 규정하고 청소년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