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시간의 사투 끝에 꺼진 불, 잇따른 불안감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32물류센터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가 109시간 만에 마침내 완전히 진압되었습니다. 인천서부소방서를 중심으로 투입된 소방 당국은 6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5층의 리튬배터리 물류 로봇으로 번지는 위기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응했는데요. 층고 10미터에 가연성 적재물이 밀집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소방대원들은 교대 없이 현장을 지키며 대형 참사를 막아냈습니다.
하지만 불이 꺼졌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완진 소식이 전해진 지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불과 7킬로미터 떨어진 제물포구 항동의 쿠팡15물류센터에서도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현장 직원들이 소화기로 초기 진압에 성공해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은 이미 최고조에 달한 상태입니다. 특히 석남동 화재로 인해 연기와 분진 피해를 본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여전히 귀가를 못 하고 있으며,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예견된 재난, 묵살된 경고들
이번 화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3년 전 덕평물류센터 화재 이후 소방 당국이 진행한 연구용역에서 이미 비슷한 위험성이 경고되었는데요. 실험 결과, 물류센터 내 상자를 쌓아둔 상태에서 불이 나면 1분도 채 안 돼 화염이 뿜어져 나오며, 소방용수를 뿌릴 때 오히려 뜨거운 가스가 위층으로 밀려 올라가 재발화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3층 온도가 급등하며 철골 구조물이 녹아내릴 수 있는 600도 이상을 기록한 데이터는 이번 참사를 거의 예언한 셈이었습니다.
문제는 제도적 허점이 그대로 방치되었다는 점입니다. 화재가 시작된 6층 메자닌은 작업 편의를 위해 설치된 구조물인데, 건축법상 산업용 설비로 분류되어 방화구획 적용 의무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화재 확산을 막아야 할 방화셔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연기와 불길이 쉽게 번졌습니다. 게다가 쿠팡은 지난해 국토교통부의 적층식 랙 설치 현황 자료 요구에도 경영 정보를 이유로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안전 관리를 위한 정보 공유조차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책임 공방과 주민 지원, 남은 과제
화재 원인 규명이 진행되는 가운데, 책임을 둘러싼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건물 소유주인 이지스자산운용이 가입한 건물보험과 쿠팡이 가입한 재고자산 보험에 각각 수천억 원이 담보되어 있는데요. 향후 보험사들이 서로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경우, 화재 원인이 건물 하자냐 운영 과실이냐에 따라 수천억 원대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주요 보험사들이 양측 보험에 모두 참여하고 있어 실제 회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편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피해 주민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신현초등학교에 긴급 의료 지원 센터를 열어 2주간 무료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11월 말까지 전담 콜센터를 운영하며 진료비와 청소비, 세차비 등을 접수받고 있습니다. 또한 전문 손해사정인을 무상으로 파견하고 인근 소상공인 지원 방안도 유관 기관과 협의 중입니다. 다만 이번 화재와 맞물려 쿠팡이 역대 최대 과징금을 부과받고 수익성이 악화되는 등 기업의 재무적 부담도 커지고 있어, 장기적인 지원과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