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남는 기관 '제로'라지만
이재명 정부가 서울 소재 공공기관의 대규모 지방 이전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5극3특' 발전 전략의 핵심인데요. 하지만 금융감독원과 국책은행 등 금융권 기관들의 반발이 거세고, 일정도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금융노조까지 다음 달 4일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금융권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정부의 의지는 확고해 보이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금융권은 왜 이전을 거부하나
정부는 연내 이전 계획을 발표하고 내년부터 본격 추진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금융권 공공기관들은 업무 효율성 저하와 금융 위기 대응 능력 약화를 이유로 강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은 이미 수도권에 금융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어 지방으로 옮길 경우 시장 감시와 위기 관리가 어려워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2005년 1차 혁신도시 이전 때도 비슷한 문제가 나왔습니다. 강제 이전 뒤에도 업무 효율이 떨어졌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죠. 이런 상황에서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당초 9월로 제시한 이전 마지노선을 10~11월로 조정했고, 구체적인 대상 기관과 시기 역시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국토부는 350여 곳의 기관을 모두 옮길 수는 없다는 현실적 판단을 내놓고 있습니다.
반면 지방자치단체들의 움직임은 반대로 빠릅니다. 부산과 전북은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고, 경남은 중소기업 및 친환경 기술 기관을, 제주는 말산업과 해양·통상 관련 기관을, 대전은 과학기술 분야 기관 추가 유치를 각각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방 입장에서는 기관 하나가 머물러도 인구 유출을 막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줄 수 있어 유치전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정부의 선택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현실적인 선별 이전이 답일까
국토교통부는 관계부처 협의와 노정 협의, 지방시대위원회 심의 등 공론화 절차를 거쳐 예외 기관 선정 기준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이는 모든 기관을 끌어내리기보다는 업무 특성과 지역 균형 발전을 함께 고려한 선별 이전으로 방향을 트일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금융권처럼 수도권 인프라와 밀접하게 연결된 기관들은 예외로 두고, 다른 분야 기관들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이 과정은 쉽지 않을 겁니다. 금융권 노조의 파업 예고처럼 갈등이 격화될 수도 있고,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서도 유치 경쟁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밝힌 것처럼 공론화를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다면, 서울 잔류 기관을 '제로'로 만든다는 원론적 목표보다는 실효성 있는 균형 발전 전략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