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이어진 법적 공백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벌써 7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임신중절 허용 주수나 방법을 정하는 대체 입법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아, 의료 현장과 여성들은 오랜 혼란을 겪어왔는데요. 2021년 1월 1일부터 낙태죄가 공식 폐지된 이후에도 세부 법령이 없어 여성들은 불법 해외 직구나 안전하지 않은 경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임신중절 의약품인 미프진의 국내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하며 논의에 새로운 불을 댕겼습니다. 대통령은 정부가 법적 논쟁을 이유로 방치하는 동안 국민이 위험에 빠지고 있다며, 모자보건법 개정 전이라도 의사의 재량으로 처방할 수 있는 실용적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엇갈린 반응 속 건강권 논쟁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박용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은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큰 걸음이라며 환영했습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가 미프진을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했고, 이미 100여 개국에서 합법적으로 사용 중인 점을 들어 규제가 오히려 안전하지 않은 임신 중단을 늘린다고 주장했는데요. 실제로 식약처 조사 결과 지난 2021년부터 최근까지 온라인 불법 판매 적발 사례가 2,600건이 넘는 등 암시장이 팽창한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의사회는 대체 입법과 의학적 안전성 검증 없이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는데요. 미프진은 자궁외임신 여부 확인과 정확한 임신 주수 판단이 필수적인 고위험 전문의약품인 만큼, 준비 없이 유통될 경우 과다출혈이나 감염, 불완전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의사의 재량이라는 명목으로 의료진에게 전가하고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아
미프진 도입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약물 허가 여부를 넘어섭니다. 허용 주수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처방 권한은 누구에게 줄 것인지, 부작용 발생 시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등 쟁점이 산적해 있는데요. 현재 OECD 36개국 중 31개국이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만, 한국처럼 명확한 기준 없이 공백 상태로 방치된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우리의 상황이 얼마나 이례적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관계 부처와 함께 구체적인 안건을 준비해 다시 논의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만 법적 테두리 없이 의사 재량에만 맡기는 방식이 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을지, 의료계와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낼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7년간의 공백을 끝내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부처 간의 책임 회피를 넘어선 실질적인 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