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오픈런, 점심 대기지옥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0월 13일 아침,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은행 앞에는 개점 30분 전부터 7명의 고객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80대 어르신은 카드 분실 신고를, 60대 여성은 대출 상담을 위해 나온 겁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12개 대기석이 꽉 찼고, 창구에서는 상담 지연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렸습니다.
같은 날 종로구 광화문의 한 은행도 비슷했습니다. 오전에는 한산했지만 점심시간인 11시 30분부터 고객이 몰려 12시 20분에는 앉을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6개 창구 가운데 2개만 열려 대기시간은 20~30분에 달했습니다. 직장인들이 점심을 반납하고 은행을 찾아야 하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겁니다.
그런데 내년 4월부터는 이 풍경이 더 팍팍해질 전망입니다. 금융노사 합의로 전국 은행의 영업시간이 하루 7시간에서 6시간 30분으로 줄어듭니다. 개점 시각이 오전 9시 30분으로 미뤄지고, 마감은 오후 4시로 유지됩니다.
해외는 주말에도 문을 연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행보는 다소 이례적입니다. 17개 주요국 은행의 평일 영업시간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평균 7시간 수준입니다. 홍콩 HSBC가 8시간 30분으로 가장 길고, 미국 4대 은행은 대부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창구를 운영합니다. 도심 지점은 저녁까지 열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토요일에도 문을 엽니다.
일본도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말 휴무가 원칙이었지만 최근 도쿄와 오사카의 일부 지점은 저녁 7시 이후까지 영업합니다. 17개국 가운데 8개국이 토요일에 일부 지점을 개방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줄어드는 창구, 커지는 우려
문제는 영업시간 단축이 점포 축소와 겹치면서 대면 서비스의 빈틈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국내 시중은행 영업점은 2020년 말 6404곳에서 올해 6월 말 5505곳으로 899곳(14%) 줄었습니다. 5대 시중은행의 3767개 점포가 30분씩 일찍 닫으면 하루 1874시간의 대면 서비스가 사라지는데, 이는 점포 267개가 통째로 없어지는 것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은행은 탄력점포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870개였던 탄력점포는 지난 9월 말 1040개로 늘었지만, 이 가운데 430개가 무인 자동화기기입니다. 일반 국민이 실제 이용할 수 있는 점포는 전체의 16% 수준에 그칩니다.
전문가들은 우려를 제기합니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는 시니어 고객이 창구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며 고난도 업무를 위해 대면이 필수라면서, 영업시간 단축이 영업점별 특성이나 고객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일률적 결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최철 숙명여대 교수도 금융당국이 소비자 불편을 조사하고 대면 수요가 많은 거점에서 탄력적으로 운영시간을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소비자단체 역시 주말과 야간 영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