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의 최저치, 엔화 가치 붕괴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가 달러당 162엔을 넘어서며 약 4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원유와 식료품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 경제 구조상 이러한 엔저 현상은 단순한 환율 문제를 넘어 국내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중대한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엔화 약세로 인한 기업 도산 건수는 2021년 3건에서 지난해 76건으로 급증하며 실물 경제에 뚜렷한 상처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 정부가 내놓은 카드는 외환 시장 개입이었습니다. 지난 5월 한 달 동안 일본 외환당국은 역대 최대 규모인 11조 7,300억 엔을 시장에 투입했는데요. 미무라 아쓰시 일본 재무성 국제 담당 재무관은 이 개입 조치가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당국은 엔화 가치가 161엔선에 접근했던 4월 30일부터 본격적인 개입에 나섰고, 이후에도 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추가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금리 격차와 정부 태도가 만든 악조건
엔화 가치 하락의 배경에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연내 금리 인상 관측이 우세해지면서 미일 간 금리 격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는데요.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0.75%에서 1.0%로 소폭 인상하고 추가 인상을 시사했지만, 시장은 이를 충분한 대응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가 미 연준보다 완만하여 금리 격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일본의 경제적 위상 하락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더해졌습니다. 1986년 12월 141.77이었던 실질실효환율은 현재 65.93으로 약 53% 감소했는데요.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장기 경기 침체가 일본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킨 결과로 풀이됩니다. 더욱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금리 인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시장에서는 엔화 약세가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총리실이 내놓은 경제 정책 방향 초안에 담긴 '적절한 금융 정책 운영'이라는 문구는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을 견제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역대급 개입과 미국과의 공조
일본 정부는 외환 개입 과정에서 미국과 매우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미무라 재무관은 미국이 일본의 조치에 대해 이견을 표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지하는 뉘앙스를 보였다고 밝혔는데요.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상상 이상으로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는 일본의 외환 개입이 미국의 묵시적 동의 하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시장에서는 현재의 환율 추이가 계속될 경우 달러당 164~165엔 수준이 추가 실개입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고용 데이터 등이 중요한 변수로 꼽히고 있는데요. 다만 일본 상공회의소가 현재 상황을 위기 국면으로 진단할 만큼 엔저 현상의 파급력은 이미 심각한 수준입니다. 외환 개입이 단기적 변동성 억제에는 효과가 있었을지라도, 금리 격차와 경제 구조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엔화 가치 회복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