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켜는 원전 르네상스
미국에서 차세대 소형모듈원전, 이른바 SMR 개발이 기록적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건국 250주년인 2026년 7월 4일까지 최소 3기의 시험 SMR에서 임계를 달성하라는 목표를 세웠는데요. 그 첫 결실로 안타레스 뉴클리어의 원자로 마크-0가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에서 무출력 임계 실증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40년 만에 미국 민간이 개발한 비경수로 원자로가 임계에 도달한 첫 사례입니다.
같은 시기,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는 와이오밍주 케머러에서 미국 최초의 상업용 SMR을 건설 중입니다. 최근 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안정적인 기저전력 확보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입니다. 실제로 메타는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최대 8기의 원자로 도입을 검토하며 부지 선정에 나서고 있습니다.
물 대신 나트륨을 흐르게 하다
테라파워가 선택한 소듐냉각고속로 방식은 기존 원전과 확연히 다른 접근입니다. 냉각재로 물 대신 액체 나트륨을 사용해 880도 고온에서도 끓지 않도록 했고, 이를 통해 대기압 저압 운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수소 폭발 위험을 원천 차단한 셈인데요. 결과적으로 비상계획구역을 기존 20~30km에서 약 300m로 획기적으로 줄이며 안전성을 1,000배 높였습니다.
이러한 안전성 확보는 공장에서 제작한 모듈을 현장에 조립하는 신공법과도 연결됩니다. 건설 기간과 비용을 대폭 줄여 전력 수요처 인근에 원전을 지을 수 있게 된 거죠. 안타레스의 경우에도 에너지부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임계 달성이라는 성과를 냈고, 이는 후속 기종들이 2027년 이후 본격적인 전력 생산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오르는 것도 이런 기대감 때문입니다.
한국 기업들의 기회와 과제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SMR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에 2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해 2대 주주로서 협력하고 있고, 한국수력원자력과 HD현대, 두산 등이 핵심 부품 공급에 가세했습니다. 미국 내에서 부족한 원전 건설 역량을 보완하는 데 한국의 제조 기술이 필수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기회만 있는 건 아닙니다. 미국 내 SMR 상용화가 빨라지면 한국 원전 산업이 설계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테라파워나 안타레스가 기술 기준과 인허가 승인 경험을 먼저 쌓으면,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수주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SK이노베이션 등은 케머러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2035년 국내 첫 4세대 SMR 상업화와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습니다. 다만 상업 운전을 통한 경제성 입증과 12기 동시 건설을 위한 거대한 공급망 구축은 여전히 풀어야 할 난제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