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만에 흔들리는 양당 정치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취임 2년 만에 전격 사임하면서 영국 정치는 또다시 거대한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브렉시트 이후 10년 사이 7명의 총리가 교체되는 전례 없는 불안정을 겪고 있는데요.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번 사태를 1832년 선거법 개정 이후 20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로 평가했습니다.
기존 보수당과 노동당이 주도하던 양당 체제가 명백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작된 정부 불신이 2016년 브렉시트를 거치며 극심한 사회적 분열로 번졌고, 이로 인해 유권자들이 기존 정당을 외면하고 리폼 UK 같은 제3세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영국 정치는 보수와 노동이라는 두 기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지형으로 접어든 것입니다.
브렉시트 이후 10년, 총리는 왜 자꾸 바뀌나
총리들이 짧은 임기로 물러나는 데는 구조적 원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브렉시트 이후 행정력이 EU와의 결별 협상에 매몰되면서 장기적 비전 설정이 뒤로 밀렸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둔화된 경제는 어떤 정권에도 민생 회복의 성과를 내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는 영국의 1인당 GDP가 EU 잔류 시보다 6~8% 낮아졌다고 추정했습니다.
여기에 영국의 의원내각제는 집권당과 의회의 신임을 잃으면 언제든 총리가 교체될 수 있는 유연한 구조인데요.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낙에 이어 스타머까지 브렉시트 협상 실패나 정책 혼선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특히 SNS를 통한 여론 형성이 빨라지면서 정치적 반기가 쉬워졌고, 이는 총리들의 정치 생명을 더욱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북부의 왕' 버넘과 난제 투성인 길
스타머의 뒤를 이을 유력 후보는 '북부의 왕'으로 불리는 앤디 버넘 하원의원입니다.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을 지낸 그는 지역 불평등 해소를 내세운 '맨체스터주의'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EU와의 관계 개선에는 긍정적이면서도 재가입 논쟁은 피하는 실용적 노선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버넘이 직면할 과제는 적지 않습니다. 막대한 국가 부채와 공공서비스 위기, 더딘 경제 성장은 여전하고, 다음 달로 예정됐던 EU 정상회담도 연기되었습니다. 시장은 버넘의 등장 가능성에 일단 긍정적으로 반응해 영국 은행주가 급등했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가시기까지는 지역 간 갈등 조정과 민생 회복이라는 험난한 길을 먼저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