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변화와 불확실성의 그림자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전국 대학교수들이 ‘변동불거(變動不居)’를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며 머무르지 않는다는 이 말은, 우리 사회가 처한 깊은 불안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2023년 말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이어지는 정권 교체까지, 쉴 틈 없이 이어진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많은 이들이 안정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죠. 이 선택은 단순한 한 해의 평가를 넘어, 변화의 속도와 강도에 대한 집단적인 위기감을 반영한 결과로 읽힙니다.
교수들의 선택에는 극명한 대비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고위 정치인들의 위선과 배신이 거론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K팝이 세계 시장에서 거둔 눈부신 성공이 언급됩니다.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도 분야에 따라 극과 극으로 달라 보이는 현실이, 오늘날의 변화가 얼마나 파편화되고 예측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역이 말하는 변화의 이치
‘변동불거’는 주역(周易) 계사전에 나오는 말로, 단순한 혼란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역은 변화 자체를 우주의 근본 원리로 보며, 그 변화는 마치 계절이 순환하듯 일정한 질서와 이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중요한 건 이 변화의 흐름을 깨닫고 유연하게 적응하는 태도죠. 즉, 교수들이 선택한 이 사자성어는 단순한 비관이 아니라,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위로 뽑힌 ‘천명미상(天命靡常)’도 맥락을 같이합니다. 하늘의 뜻이 항상 같지 않다는 이 말은 역사적으로 권력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민심이 변하고 권력의 풍향이 바뀔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거죠. 3위인 ‘추지약무(趨之若鶩)’, 즉 오리 떼처럼 무리 지어 달려드는 현상에 대한 지적 역시, 사실보다 감정이 선행되고 여론이 쉽게 휘둘리는 불안정한 오늘날의 소통 환경을 꼬집고 있습니다.
초불확실성 시대의 도래
이러한 내부적 혼란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초불확실성의 시대’의 시작으로 진단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리고 2024년 현재, 그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미중 간의 신냉전 구도, 세계 경제의 정체, 그리고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이 가져올 지형 변화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은 전 지구적 차원의 불안정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AI의 발전 속도와 사회적 영향력은 그 누구도 확실히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맞물리며 우리는 정치, 경제, 기술, 사회 모든 영역에서 기존의 상식과 예측 틀이 무너지는 경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주역의 가르침처럼 변화 자체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일지 몰라도, 그 변화가 가져오는 혼란의 강도와 범위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유연한 적응과 소통의 필요성
그렇다면 이 ‘변동불거’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답은 사자성어 선택의 배경에서도 이미 암시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변화의 본질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사고입니다. 모든 것이 고정불변하다는 환상을 버리고, 상황이 끊임없이 흐르고 변형된다는 전제 아래 생각하고 계획해야 합니다. 둘째는 깊은 성찰과 건설적인 소통입니다. ‘추지약무’처럼 감정에 휩쓸려 집단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진 시기입니다.
결국 ‘변동불거’는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에 대한 통찰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변화가 상수인 세상에서, 오히려 그 변화의 흐름을 읽고 미리 준비하는 개인과 사회가 더욱 강인하게 생존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교수들이 ‘도량발호’를 통해 권력자의 오만을 경계했다면, 올해의 ‘변동불거’는 불확실성이라는 보편적 현실 앞에서 우리 모두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묻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곳에서만, 지속 가능한 안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될 테니까요.